[광화문에서/윤상호]중국이 사드로 잃은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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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패권’을 의미하는 헤게모니는 국제정치의 핵심 개념이다. 한 집단이나 국가 문화가 다른 집단이나 국가 문화를 지배하는 힘으로 정의된다. 그래서 국제정치는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힘의 정치(power politics)’로 불리기도 한다.

 실제로 동서고금의 인류 역사는 ‘패권 쟁탈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대 로마제국과 중근세 유럽제국을 거쳐 현대 미국에 이르는 패권의 ‘바통 터치’가 그 증거다. 패권을 둘러싼 강대국의 흥망성쇠는 자연의 섭리처럼 받아들여진다. 영원한 패권국은 존재하지 않았고, 미국도 예외일 수 없다는 얘기다. 중국의 굴기(굴起·우뚝 섬)가 미 패권시대의 끝을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은 총칼에 기댄 ‘일방통행적 패권’이 통용되는 시대가 아니다. 경제·군사적 주도권은 물론이고 자유와 인권, 주권 존중 등 인류 보편의 가치를 공유해야 헤게모니를 쥔 국제사회의 리더로 인정받을 수 있다. ‘하드파워(힘)’에만 의존하는 강대국은 주변국과 국제질서를 위협하는 ‘잠재적 적국’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을 겨냥한 중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압박은 가까운 미래에 닥칠 ‘차이나 헤게모니’의 암울한 예고편처럼 보인다. 한한령(限韓令·한류금지령)과 경제 보복 등으로 교묘하고 집요하게 한국을 옥죄는 것은 힘 앞에 굴종을 강요한 전근대적 사대주의의 재판(再版)이다. 더욱이 북한의 대남 핵위협에는 침묵하면서 한국의 자위적 조치를 공격하는 중국의 모순적 행태는 어떤 이유로도 납득하기 힘들다.

 일각에선 사드를 남중국해 문제와 함께 미중 패권 대결의 ‘전초전’으로 보기도 한다. 중국은 미국과의 기 싸움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고, 그 피해는 한국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대한(對韓) 사드 보복이 득보다 실이 크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사드에 ‘몽니’를 부릴수록 정작 손해를 보는 쪽은 중국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미다.

 우선 중국은 군사 위협론을 스스로 키웠다. 말로는 평화와 조화를 강조하면서 무력을 앞세워 주변국을 강압하는 이중성은 그간 축적한 외교적 신뢰를 허무는 패착이다. 지난달 한국의 사드 기지를 타격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들을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대거 침범시켜 무력 시위를 벌인 게 대표적 사례다.

 중국과의 경제 협력이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자초했다. 자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를 ‘보복 카드’로 활용하는 중국을 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냉랭하기만 하다. 한국에서 교역 다변화 등을 통한 대중 경제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 상황을 중국은 위기 신호로 봐야 한다. 더 큰 문제는 ‘중국식 일방주의’의 심각성을 부각시켰다는 점이다. 자국 이익만 앞세워 완력을 휘두르는 중국에 대한 주변국의 경계와 불안은 날로 커지고 있다. 중국의 사드 공세가 노골화될수록 미국의 견제 조치도 가속화될 것이 자명하다.

 중국은 사드 문제를 역내 리더십을 재평가받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사드 트집 잡기’를 멈추고, 사태의 본질인 북핵 문제 해결을 주도하는 것이 대국(大國)의 면모를 살리고 자국의 국익을 도모하는 길이다. 그것은 중국의 부상이 국제사회에서 환영받는 첩경이기도 하다. 중국의 대승적 결단을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기다리고 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사드#한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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