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한]‘그분 주사’ 신드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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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2003년 1월 고 노무현 대통령은 서울 강남의 유명한 척추전문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그 이후 그 병원은 환자들의 예약이 수개월이 밀릴 정도로 유명해졌다. 당시 대통령이 서울대병원이나 국군서울지구병원이 아닌 개인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최근에 이런 대통령 유명세가 병원이 아닌 의약품에도 생겼다. 바로 ‘그분주사’, ‘웰빙주사’, ‘맞춤영양주사’ 등의 패키지로 병·의원에서 팔리는 태반주사, 백옥주사, 복합비타민주사, 감초주사 등이다. 의료계에선 주로 항노화, 피부 미용, 피로 해소 등의 목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주사제들이다.

 이번 국정조사에서 청와대 의무실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감초주사와 태반주사, 백옥주사 등을 맞았다고 시인하면서도 미용 목적으로 사용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의무실장 말대로라면 이 주사제들은 피로 해소, 면역력 증강용으로 사용된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 말을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 박 대통령 나이대의 사람, 아니 최소한 그런 주사를 맞아본 사람이라면 말이다.

 최근엔 주름살 제거를 위한 보톡스와 필러도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4월 박 대통령이 멕시코를 방문할 때 유독 얼굴이 부은 것처럼 나온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가 됐기 때문이다. 이 동영상을 본 성형외과 의사들은 특히 눈두덩, 볼 주위가 부어 있는 것이 보톡스나 필러를 맞은 것처럼 보인다고 언급했다. 물론 나이든 사람의 경우 장시간 비행기 여행 시 얼굴이 전반적으로 부을 수도 있다. 

 주름을 펴고 좋은 피부를 갖고 싶은 회춘의 본능은 나이가 든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있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10년은 젊어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평소에 없던 자신감과 삶의 활력도 생긴다. 그러나 과하면 반드시 인체에 문제가 생긴다.

 백옥주사나 마늘주사, 신데렐라주사는 알레르기 과민반응이 생겨 창백해지거나 혈압이 떨어질 수 있고 피부에 발진이 생길 수 있다. 특히 태반주사는 만성 간 질환 환자의 간 기능 회복 외의 각종 효과에 대해선 의학적인 근거가 약하다. 또 태반주사를 과다하게 맞은 남성에게는 여성형 유방이 생길 수 있다. 더구나 이 주사제들이 피로 해소에 좋다고 하지만 원래 병원에 가서 편안하게 누워 수액만 맞아도 피로가 싹 가시는 위약효과가 있어 명확하게 주사제 효과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부족한 영양 보충은 대개 비타민제 복용으로 충분하다. 필러의 경우 시술자의 실수로 얼굴 혈관을 파괴해 피부 괴사가 생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또 보톡스를 잘못 맞으면 사무라이 눈썹처럼 변한다.

 심지어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일본에서 맞았다는 면역세포주사는 국내에선 아직 임상허가조차 못 받은 치료제이다. 국내에서는 임상허가 절차가 매우 엄격한 반면 일본은 의사가 결정하면 맞아도 될 만큼 법이 느슨하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일본에 가서 면역치료제나 줄기세포치료제를 맞는다. 그 경우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책임은 본인이 져야 한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사람은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지금 얼굴은 과거 4년 전 얼굴과 비교해 주름이 더 깊어졌다. 대통령직에 수반되는 수많은 번뇌와 고민 등을 겪으면서 자연스럽게 노화가 온 것일 게다. 하지만 그의 임기 말 지지율은 60%에 이른다. 임기 초 이후 최고의 지지율이다. 아무도 그 얼굴이 흉하거나 늙었다고 보지 않는다. 더 진솔하고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한다. 지금 박 대통령 얼굴을 보면 4년 전에 비해 피부도 하얗고 주름도 없어 더 젊어졌다. 하지만 이런 인공적인 젊음보다는 오바마의 깊은 주름에 인간미를 더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노화에 비치는 내면의 아름다움 때문이 아닐까.
 
이진한 정책사회부 차장·의사 likeday@donga.com
#에이브러햄 링컨#백옥주사#마늘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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