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상훈]2016년판 시류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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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 차장
이상훈 경제부 차장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인 1988년 11월. 국회에선 5공 청문회가 열렸다. 이 청문회는 사상 처음 TV로 생중계되면서 전 국민적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내용은 기대를 밑돌았다. “일해재단 강제 모금은 있을 수도 없고 있을 필요도 없었다”는 장세동 전 대통령경호실장의 뻔뻔스러운 증언이나 “무식한 놈이 어디다 대고 이럴 수 있냐”는 국회의원의 막말이 오갈 뿐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일해재단에서 간판을 바꿔 단 세종연구소의 이사장이 증인으로 나서면서 바뀌었다. 주인공은 현금 45억 원과 당시 시가 6억 원 상당의 땅을 기부하고 이사장을 떠맡았던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었다. 분위기 반전의 출발은 당시로선 이해하기 힘든 국회의원들의 행태였다. 기세등등하던 의원들이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증인이라 부르겠습니다”며 저자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고 하이라이트는 증인으로 출두한 정 회장의 발언이었다. 그의 말 속엔 당시 권력과 대기업의 관계가 고스란히 반영돼 있었다.

 정 회장은 ‘왜 그 많은 돈을 일해재단에 바쳤냐’는 의원들의 추궁에 시류론(時流論)을 꺼내 들었다. “편하게 살기 위해 돈을 냈다. 시류에 따랐다”는 것이었다. ‘내일이라도 정치 상황이 변하면 또 시류에 따라 살겠다는 뜻이냐’는 추궁에 “천년이 가도 마찬가지다. 권력 앞에서 왜 만용을 부리겠나”라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정 회장은 ‘독재정권에 빌붙지 말았어야 했다’는 지적에는 “현대가 파산했다면 그것이 떳떳한 일이겠는가”라고 되받아쳤다. 그의 시류론은 이후 청문회의 핵심 화두로 떠올랐다. 이에 부담을 느낀 정 회장은 “시류에 순응한다는 것은 힘 있는 사람에게 잘못 보여 공연한 괴로움을 당하지 않으려는 것이다”라며 꼬리를 내렸다.

 정 회장의 시류론은 권력에 저항하다가 한순간에 해체된 국제그룹 등의 사례를 수없이 보고 들으며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정경유착의 원흉, 반성할 줄 모르는 재벌이라는 비판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수천 명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기업주에게 생존과 성장보다 더 큰 가치는 없다는 생각을 당당하게 드러낸 것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문제는 지금도 정 회장의 시류론이 유효하다는 점이다. 권력은 대통령을 풍자한 코미디 프로그램을 제작했다는 이유로 기업의 최고경영자를 물러나게 하고, 멀쩡한 면세점을 문 닫게 해 1000명이 넘는 근로자들을 길거리에 나앉게 만들었다. 대통령이 직접 대기업 총수를 한 명씩 독대하며 문화·스포츠에 지원해 달라 했다는데 기업에 선택의 여지가 있었을까.

 야당과 시민단체 일부는 “기업이 건실하면 대통령이 압박해도 돈을 함부로 낼 수 없다”고 말한다. 순진한 소리다. 4년 전 야당 주도로 제정한 ‘5년 주기 면세점 재허가권’ 제도가 작금의 사태를 가져왔다. 정부의 의지에 따라 기업의 운명이 너무나도 쉽게 정해지는 현실에서 입법권을 쥔 국회의원이 ‘당신들이 떳떳하면 그만’이라고 몰아세우는 건 가혹한 일이다.

 며칠 뒤면 역사에 기록될 최순실 청문회가 열린다. 대기업 총수 9명이 줄줄이 증언대에 선다. 벌써부터 정치권에서는 기업들만 따로 청문회를 열자며 벼르고 있다는 소리도 들린다. 기업들은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하지만 어쩌면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온갖 규제를 앞세워 갑질만 하는 정부와 대기업 때리기가 정의인 줄 아는 정치권에 대해 국민 앞에 제대로 속사정을 보여줄 수 있다. “시류에 따라 공연한 괴로움을 당하지 않으려고 냈다”며 속내를 드러내는 기업인을 비난할 국민은 많지 않다. 이제라도 그동안 반복돼온 구습을 털어내지 못하면 기업들은 영원히 준조세와 갑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선진국 문턱을 넘는 일도 꿈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이상훈 경제부 차장 january@donga.com
#5공 청문회#장세동#정주영#시류론#대통령#최순실 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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