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성동기]홍콩 민주주의와 한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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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동기 국제부 차장
성동기 국제부 차장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온 나라가 뒤숭숭하다. 스스로를 비하하는 ‘헬 조선’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대한민국에 자부심을 가져온 사람들이 받은 마음의 상처는 더욱 크다.

 막말과 여성 비하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도널드 트럼프가 힐러리 클린턴을 꺾고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허탈감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 발언이 활용되기도 한다. 미국의 상징인 뉴욕 자유의 여신상 사진에 ‘이러려고 오랫동안 손들고 있었나’라는 자막을 달거나, 그리스 아테네 신전을 배경으로 ‘이러려고 민주주의 만들었나’ 등의 자학적인 패러디가 이어진다. 웃고 넘어가기에는 너무나 씁쓸하다.

 분노는 시민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우리와는 이유가 다르지만 ‘아시아의 진주’ 홍콩에서도 최근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광화문 촛불집회에 20만 명이 모여든 지난 주말 홍콩 시내에선 1만3000여 명이 중국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다. 경찰의 최루액 분사를 우산으로 막아내며 중국의 부당한 개입을 비난했다. 8일에도 변호사 3000여 명이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침묵시위를 벌이는 등 2014년 79일간 홍콩 도심을 마비시킨 ‘우산혁명’에 이은 제2의 우산혁명으로 번질 조짐이다.

  ‘최순실 패거리’가 한국 국민들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면 홍콩 시민들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힘을 과시하려는 중국의 고압적인 태도였다. 한국의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홍콩 입법회 의원 2명이 지난달 취임 선서에서 ‘지능적’ 방법으로 중국을 조롱한 게 발단이 됐다. 이들은 ‘홍콩은 중국이 아니다’라는 현수막을 어깨에 두르고 선서하거나 중국의 영문 국호의 ‘Republic’을 욕설을 섞어 ‘Re-fxxxing’으로 바꿔 읽었다.

 홍콩 당국이 자체적으로 이를 문제 삼고 홍콩 법원에 판단을 구한 상황에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임위원회가 나서 이들의 의원 자격을 박탈하는 유권해석을 내리면서 홍콩 사법 독립 문제가 쟁점으로 부각된 것이다. 문제 의원들이 다시 선서하는 길조차 막아 ‘중국에 대들면 바로 퇴출된다’는 경고장을 보냈다는 해석도 나온다. 영국 외교부와 미국 국무부가 최근 사태에 우려를 나타내자 중국은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며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중국은 1997년 영국으로부터 홍콩을 반환받으면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원칙에 따라 향후 50년간(2047년까지) 군사와 외교를 제외하고는 홍콩에 고도의 자치를 보장한다는 약속을 했다. 물론 여기에는 사법 독립도 포함된다. 하지만 이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자본주의 홍콩을 사회주의 중국에 흡수하려 한다는 게 홍콩 시민들의 우려다.

 가난과 군부독재를 극복하고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은 홍콩 시민들의 이런 열망을 이해할 수 있다.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공존을 위한 일국양제 약속을 헌신짝처럼 여기는 중국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힘으로 누르려 하면 홍콩의 위상뿐만 아니라 대국(大國)을 자처하는 중국의 대외 이미지에도 타격은 불가피하다.

 중국은 9일 트럼프의 당선이 확정되자 신속하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명의로 축전을 보내 “(미국과) 충돌하거나 맞서 싸우지 않으려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강자에겐 약하고 약자에게는 힘을 과시하는 못된 습성을 버리지 못하면 진정한 대국이 될 수 없다. 날로 팽창하려는 중국에, 군사대국을 꿈꾸는 일본 그리고 여기에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미국 행정부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외세의 격랑이 거칠게 일고 있는데 한국은 최순실 국정농단 파동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우리 운명이 건곤일척(乾坤一擲)에 놓여 있는데 모두 넋을 놓고 있으면 어떡할 것인가.
 
성동기 국제부 차장 esprit@donga.com
#중국#최순실 패거리#분노#홍콩 반환#일국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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