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윤상호]핵무기 맞불전략의 딜레마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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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일국의 지도자들이 가진 외고집(pigheadedness) 때문에 국민 전체를 없애야 하는 필요성에 대해 깊이 후회한다….” 1945년 8월 9일.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일본 나가사키에 원폭(原爆) 투하를 승인한 직후 이렇게 토로했다. 사흘 전 히로시마를 잿더미로 만든 원폭을 또 사용해야 하는 고뇌가 그를 괴롭혔다. 그는 “일본 여성과 아이들에게 인간적 연민을 느낀다” “원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단 한 발로 수만 명을 살상하고, 도시 전체를 파괴하는 원폭의 위력은 트루먼 대통령을 비롯한 전 인류에게 충격을 안겼다.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수천 기의 핵미사일을 서로 겨눴지만 ‘핵단추’를 누를 엄두를 내지 못한 것도 묵시록을 보는 것 같은 핵 파괴력의 공포 때문이었다.

 상대를 끝장낼 수 있지만 절대 사용해선 안 되는 핵무기의 ‘패러독스’는 핵전략에서도 잘 드러난다. 영어로 ‘미친’과 같은 뜻의 ‘상호확증파괴(MAD·Mutually Assured Destruction)’ 전략은 핵을 사용하면 ‘너 죽고 나 죽는다’는 섬뜩한 경고다. 서로를 절멸시킬 핵무장력으로 ‘공포의 균형’을 달성해 평화를 유지한다는 전략도 같은 논리다. 결국 핵은 핵 이외 다른 수단으로 저지할 수 없다는 게 핵 억지 전략의 요체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이후 핵공격 위협이 현실화되면서 핵무장론이 힘을 받는 까닭이기도 하다. 국제사회의 경제·외교적 제재를 무릅쓰고라도 북핵 저지를 위해 최소한의 핵 자위력을 갖추자는 주장은 일견 설득력 있게 들린다. 초유의 안보위기를 맞아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데 이견을 달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대북 ‘핵 맞불전략’은 효용성과 실효성 측면에서 따져볼 부분이 많다. 우선 기존 핵 억지 전략이 김정은에게 먹혀들지 장담하기 힘들다. 냉전 기간 미소 양국이 핵전쟁 참화의 위기를 넘긴 데는 양국 지도자와 군 지휘부의 합리적 판단이 주효했다. 당시 양국은 핵으로 먼저 공격해도 적국의 핵 보복으로 수십만의 자국민이 살상되면 국가 존립이 힘들고 억지 효과도 ‘제로(0)’라고 봤다. 이념과 체제를 떠나 국민을 볼모로 한 핵전쟁을 시도할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정권 유지와 국가 존립을 동일시하는 김정은은 딴마음을 품을 수 있다. 최악의 상황에서 전세를 뒤집거나 정권 생존의 단 1% 가능성만 있어도 핵을 사용할 개연성이 있다. 김정은이 전 인민이 희생돼도 상관없다는 ‘이판사판식 핵 도박’을 염두에 두고 있다면 한국이 핵을 가져도 억지는 힘들 수밖에 없다. 

 핵무장과 핵 사용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도 간과하기 힘들다. 북한의 핵 선제 공격 징후 시 한국 같은 고도의 민주국가가 핵 전면전을 감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핵 공격 임박 징후 때 대북 핵 선제 타격 여부를 놓고 극심한 국론 분열과 갈등도 빚어질 수 있다.

 북한의 핵을 저지하거나 실전에 사용하기 어려운 핵무기라면 ‘종이호랑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설픈 핵무장론은 김정은의 핵을 합리화해 주고, 한국의 입지만 좁히는 패착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대한(對韓) 확장 억제를 강화하는 동시에 북 지휘부를 겨냥한 탄도미사일과 핵·미사일 기지를 고철로 만드는 고출력마이크로웨이브(HPM)탄 등 역비대칭 무기를 개발해 배치하는 게 더 현실적일 것이다. ‘안보 포퓰리즘’에 편승한 핵무장론은 결코 북핵 저지를 위한 건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핵무기#안보 포퓰리즘#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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