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상훈]일본의 오와하라, 한국의 고용절벽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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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 차장
이상훈 경제부 차장
  ‘대졸 취업자 6년 연속 증가’ ‘인재 쟁탈전 갈수록 치열’.

 요즘 한국에선 기대하기 어려운 뉴스지만 일본에서는 이런 제목의 기사들로 신문 지면이 채워지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일본의 주요 기업 1102곳을 조사한 결과 내년 봄에 입사할 대졸 신입 예정자가 올해보다 2.8% 늘어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심지어 일본에선 졸업 예정자의 취직을 약속하는 대신 더 이상 구직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막으며 괴롭힌다는 뜻의 신조어 ‘오와하라(おわハラ)’라는 말도 유행한다. 이 말은 ‘끝내라’란 뜻의 일본어(おわれ)와 ‘괴롭힘’을 뜻하는 영어(harassment)를 합성한 것이다.

 돈 풀기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로 일본의 이 같은 인재 모시기 전쟁을 설명하긴 어렵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일본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0.5%로 한국(2.7%)의 5분의 1에도 못 미친다. 0%대 저성장에서 허우적대는 나라가 어떻게 그 많은 일자리를 만들었을까. 답은 채용을 늘린 회사의 면면에서 찾을 수 있다.

 올해 일본에서 가장 많은 대졸 신입직원을 뽑은 회사는 최대 유통업체 이온그룹이다. 2014년부터 3년간 일본과 중국, 동남아시아 등지에 34개 점포를 새로 열면서 채용규모가 늘었다. 약국 체인회사들의 공격적인 채용도 눈에 띈다. 일본의 대형 약국체인 쓰루하그룹은 695명을 뽑으며 파나소닉(650명) 스미토모생명(649명) 히타치(600명) 등 세계적인 전자회사나 금융회사를 앞질렀다.

 일본 약국체인은 규제 완화와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 특수의 최대 수혜 업종으로 꼽힌다. 2009년 법 개정으로 일반인도 의약품을 팔 수 있게 하는 등록판매자 제도가 생겨나자 드러그스토어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의사가 왕진을 가듯 약사가 집을 방문해 약을 조제해주는 재택조제는 ‘방문 약사’라는 새로운 직업도 만들었다. 그 결과 1년 전보다 채용규모가 0.6% 줄어든 제조업의 빈자리를 서비스업 등 비제조업(4.4%)이 채웠다.

 한국은 어떨까. 일본에서 일자리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대형 유통업체들이 한국에서는 전통시장과 중소상인을 위협하는 존재로 비난받기 일쑤다. 영업시간과 휴일도 법으로 제한받고 지방자치단체장의 허가 없이는 신규 출점도 불가능하다. 그 결과 2013년 6.3%였던 대형마트의 매출 신장률은 지난해 2.4%로 떨어졌다. 그나마 성장 가도를 달리던 면세점 부문에선 관세청이 면허 갱신 여부를 두고 씨름하는 사이 멀쩡하게 운영되던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등이 문을 닫았다. 그 때문에 수천 개의 일자리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약국업종은 일본과 한국의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분야다. 일본이 약사법을 개정한 7년 전 한국에서도 기획재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비슷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약사회 관계자들이 공청회장에서 단상을 점거하고 물리력을 행사하며 말도 못 꺼내게 했다. 국민 불편을 해소하자는 주장에 보건복지부는 “아프면 병원 응급실을 이용하면 된다”며 반대했다. 결국 편의점의 진통제와 소화제 일부 판매를 허용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경쟁국에서 일자리의 보고(寶庫)로 대접받는 업종이 각종 규제로 싹이 잘리는데 청년실업 문제가 풀린다면 그게 이상한 게 아닐까. 제조업 취업자가 3개월 연속 감소하고 대졸 실업자가 30만 명을 넘어서는 고용절벽이 나타났는데도 국회는 수년째 법인세 인상을 놓고 결론 없는 공방만 되풀이하고 있다. 의료 민영화는 안 된다며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제정 논의가 중단된 지도 4년이 넘었다. 3년상(喪)을 치를지, 1년상을 치를지를 두고 다툰 조선시대의 예송논쟁이 이보다 허무했을까. 언제까지 이웃 나라의 구인난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봐야 할까.
 
이상훈 경제부 차장 january@donga.com
#일본의 오와하라#고용절벽#실업#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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