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성규]대한민국 마약 수사의 현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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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규 채널A 사회부 차장
홍성규 채널A 사회부 차장
 “이러다가는 밑동까지 다 마약에 썩어 들어갈 거예요.”

 10여 년 전 검찰 내 마약 범죄 수사 전문가라는 A 검사가 했던 말이다. 당시엔 선뜻 공감하기 어려웠다. ‘유엔 지정 마약 청정국인데…’ ‘우리나라 같은 치안국가에서…’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최근 신문과 방송에 줄지어 보도되는 사건들을 보며 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그의 예언이 빈말이 아니었던 것 같다. 무기중개상으로 국방부 장관까지 농락했던 린다 김이 필로폰을 투약해 철창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뛰어난 지성을 뽐내며 이른바 ‘뇌섹남’으로 각광을 받았던 배우 최창엽 역시 같은 혐의로 구속됐다. 커피 배달을 하며 필로폰을 팔고 다닌 다방 여종업원 등 10여 명이 적발되기도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마약에 취해 심야 고속도로를 누빈 대형 화물차 기사들이 무더기로 검거됐다는 소식이다. 가뜩이나 빠르게 지날 때면 옆 차가 휘청거릴 정도로 큰 대형 화물차의 기사들이 환각 상태에서 전국 고속도로를 누비고 다녔다는 것이다. 누가 피해자가 될지 모르는, 말 그대로 광란의 질주를 한 셈이다. 

 린다 김, 최창엽, 다방 여종업원, 화물차 기사가 손을 댄 마약이 모두 필로폰이었다는 사실도 깜짝 놀랄 일이다. 한번 손대면 끊기 어렵다고 할 만큼 중독성이 강한 마약이다. 마약 수사관들이 “‘필로폰을 끊었다’는 말은 99% 거짓말”이라고 장담할 만큼 폐해가 크다. 그렇게 위험한 필로폰이 각계각층에 퍼져 있는 실태가 최근 단속 결과로 드러난 셈이다.

 마약밀수 단속 실적 또한 급증세다. 2011년 29kg에서 지난해 92kg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적발된 마약 가운데 “중독성이 가장 강하다”는 필로폰이 72kg으로 가장 많았다. 무려 240만 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지난해 마약 사범 역시 역대 최대인 1만1916명이다. 현재 인구 10만 명당 23명이 마약 사범인 셈이다. 유엔 선정 ‘마약 청정국’은 10만 명당 마약 사범 20명 미만을 기준으로 한다. 우리나라는 마약 청정국 지위를 이미 박탈당한 셈이다.

 마약 확산의 원인을 찾아내고 예방할 수 있는 처방이 시급한 상황이다. 우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국제 우편, 해외 직구 등 마약 밀거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뿌리를 뽑아내야 한다. 인터넷 검색창에 마약을 다르게 일컫는 은어들을 몇 가지 넣어보면 마약을 배달까지 해준다는 판매 글들이 수두룩하다. 청소년까지 쉽게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더 크다.

 우리 마약 단속 역량도 재평가해야 한다. 10여 년 전 A 검사는 마약 확산과 함께 마약 수사 역량의 질적 저하 문제를 우려했다. 이른바 특수통, 공안통 검사들이 검찰 조직 내에서 승승장구하는 반면 마약 수사 인력들은 상대적으로 찬밥 신세라는 한탄이었다. 오겠다는 검사들이 없어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공들여 쌓아온 정보력도 와해될 것이라는 걱정이었다. 그 여파가 10여 년이 지난 현재에 나타나는 것일 수도 있다.

 마약 수사관들의 사기 문제도 되돌아볼 문제다. 전체 검찰 사무직 분야에서 따로 인사 관리가 이뤄지는 마약 수사관들은 인사 적체에 허덕이고 있다. 승진 기회가 적고 올라갈 수 있는 직위도 낮은 편이다. 적극적인 단속을 할 동기부여가 되지 않고 사기도 낮을 수밖에 없다.

 수사 전문직들에 대한 차별이 마약 단속 저하로 이어지고, 또 그 여파가 국민정신 건강의 근간까지 썩히는 사태로 번져선 안 될 일이다.

홍성규 채널A 사회부 차장 hot@donga.com
#마약#마약 수사#마약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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