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원홍]홍명보 의리 축구 논란에 가린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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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한국 감독은 네덜란드 출신의 딕 아드보카트였다. 한국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4강 신화를 이루었던 거스 히딩크에 이어 본선에서 연달아 네덜란드 출신 감독을 기용했다. 독일 월드컵에서 만난 네덜란드 기자로부터 히딩크와 아드보카트를 비교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네덜란드가 낳은 11명의 명감독을 분석한 책의 저자였던 코번 기자는 히딩크에 대해 ‘피플 매니저(People Manager)’라는 표현을 썼다. 한마디로 사람을 아주 잘 다룬다는 것이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에 대해서는 ‘전술 운용에 뛰어난 사람’이라고 평했다.

 누가 더 나은 감독이냐는 질문에 “역대 최고 감독은 요한 크라위프, 현재 최고 감독은 히딩크”라고 했다. 당시 히딩크는 한국의 4강 신화를 이루어낸 데 이어 호주 대표팀을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올려놓으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10년 전 독일 월드컵 당시 들었던 네덜란드 기자의 이야기를 떠올린 건 최근 홍명보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발표한 박사학위 논문을 읽어 본 뒤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원칙 없는 선수 선발로 ‘의리 축구’ 논란을 빚었던 홍 감독은 이 논문에서 “팀을 새롭게 정비하고 본인이 원하는 방식을 체득시키기에는 그 기간이 촉박했고 때문에 과거에 나와 호흡을 맞췄고 나를 가장 잘 이해하는 고참급 선수가 필요했던 것이 그 당시 상황이었다”고 적었다.

 히딩크 감독이 최고 감독의 반열에 올랐던 것은 선수의 심리를 꿰뚫었기 때문이다. 히딩크는 분명한 비전과 신념을 지녔지만 권위를 앞세워 선수들에게 접근하지 않았고 선수 개개인에 대한 배려 및 지적 자극을 통해 선수들을 분발시켰다는 평을 듣는다.

 많은 감독이 히딩크처럼 적재적소에 선수들을 활용하고자 한다. 그러려면 선수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시간이 촉박했던 홍 감독이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선수들 위주로 팀을 꾸리려 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는 축구를 떠난 분야에서도 조직의 리더가 쉽게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다. 자신이 잘 알고, 일을 맡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뿌리치고 낯선 인물을 핵심 보직에 앉히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러나 소속팀에서 활약이 미미한 선수는 뽑지 않는다는 원칙을 무너뜨리고 자신이 믿는 선수 위주로 뽑은 뒤의 부작용은 컸다.

 홍 감독의 실패에는 분명히 교훈으로 삼아야 할 점이 있다. 이 점이 그의 논문이 지니는 유효한 점일 것이다. 그러나 홍 감독의 자성 어린 분석에도 불구하고 그때나 지금이나 함께 거론되어야 할 점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브라질 월드컵 실패 요인을 분석할 때면 으레 홍 감독의 편파적 선수 선발이 도마에 오른다. 그러나 모든 실패의 책임을 감독 개인에게만 지울 수 있는가.

 한국은 역대 월드컵에서 성적이 좋지 않을 때면 감독 교체 카드로 위기를 돌파하곤 했다. 그러나 이는 언제나 대증요법일 뿐이다. 브라질 월드컵 실패 요인과 관련해서도 홍 감독의 ‘의리 축구’ 논란뿐만 아니라 감독 선임의 중장기 과정, 유소년 축구를 비롯한 전반적인 축구 인프라의 개선, 프로축구의 질적인 발전 등 복합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를 함께 논의했어야 한다. 이런 문제들은 홍 감독 개인에 대한 비판에 가려 적극적으로 거론되지 않은 느낌이 있다.

 한국은 다시 2018 러시아 월드컵 예선을 치르고 있다. 성적이 좋지 않다면 울리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비판도 거세질 것이다. 그러나 감독에 대한 비판에 앞서 모두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히딩크 같은 명감독을 모셔오는 것보다 먼저 할 일은 축구 발전의 토대를 갖추는 것이다.

이원홍 스포츠부 차장 bluesky@donga.com
#2002 한일 월드컵#거스 히딩크#딕 아드보카트#홍명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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