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위용]법치 대신 人治의 유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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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위용 오피니언팀 차장
정위용 오피니언팀 차장
2000년대 서울중앙지검 조사 대기실에는 이따금 미모의 젊은 여성 여러 명이 한꺼번에 찾아왔다. 주로 유흥주점 불법 영업 단속에 걸렸거나 참고인 신분으로 나온 사람들이었다. 한결같이 “푸우” 한숨을 쉬면서 시계를 자주 봤다. 그러면서 “빨리 조사받고 돌아가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예정된 조사는 이런저런 이유로 지연되기 마련. 그러면 눈물을 쏟아내며 우는 여성들이 눈에 띈다. 초조한 기다림 속의 공포였다. “매는 맞을 때보다 맞기 전의 공포 때문에 더 두렵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했던 순간이다.

검사가 참고인에게까지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에 대해서는 법전에도 처벌 조항이 없다. 그래서 맘대로 할 수 있다. 사법 정의라는 이름으로. 그런데 그 정의가 흔들리거나 심하게 의심받는 경우가 있어 왔다. 수사 ‘칼바람’을 실은 여러 사건 수사가 동시에 진행되는 요즘이 특히 그렇다.

올해 들어 그 바람은 당초 검찰의 조직 보호 본능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였다. ‘정운호 게이트’에서 검찰 현관(現官) 비리 의혹으로 여론의 관심이 쏠리자 공교롭게도 대우조선해양 비리와 롯데그룹 비자금이라는 ‘쌍끌이’ 어장에서 수사 바람이 일었다. 여기에다 진경준 검사장 사건이 떠오르자 그 바람이 광풍으로 돌변했다. 검찰은 ‘돌려막기식’ 수사 착수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쌍끌이 수사에서 현관 의혹이 희석된 것은 사실이다.

10여 년 전에는 의도가 불순한 사정(司正) 정국에서도 “시원하다”는 소리가 가끔 들렸다. ‘표적 수사’ 논란은 있었지만 부패한 정치인과 재벌 총수에 대한 단죄가 세파에 지친 서민들에게 정의로움으로 비쳤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요즘은 그런 풍경도 구경하기 힘들다. 지난해 8개월 동안 이어진 포스코 수사처럼 ‘대물’ 하나 건지지 못하고 마냥 시간만 끈다.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작금의 수사가 조직 능력의 120%를 넘었다”며 과도한 직접 수사를 꼬집었다. 뒷감당도 할 수 없는 수사를 계속해야 한다는, 무슨 사명감에 쫓기는 듯이 보인다는 것이다. ‘정의는 나중이고 우선 수사 판을 돌려야 한다. 그래야 세상의 이목을 돌려 정국을 검찰 중심으로 이끌어 간다’고 생각한다면 아주 위험한 징후다. 그렇게 될 수도 없을뿐더러 그럴수록 수사 자체가 정쟁으로 비화한다. 검찰 조직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그보다 더 심각한 우려는 검찰이 법치주의에서 벗어나 인치(人治)의 유혹에 빠진다는 점이다. 법치의 선도자가 돼야 할 검찰은 항상 그런 위험에 노출돼 있다. 검사 지위와 권한으로 한진그룹을 압박한 뒤 가족의 주머니를 채운 진경준 검사가 그 지경에 빠졌다. 이는 검찰에만 내사 종결과 공소 제기권이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법률 기술자들’의 일탈이 더 사악하다. 위법 행위가 아니라 해도 수사 과정이나 최종 단계에서 내리는 각종 결정에도 인치의 위험이 도사린다. 법치를 일탈한 검사들은 꼭 법으로 다스려야 할 대상에 눈을 감거나 법의 외피를 두른 수사의 칼을 마음대로 휘두른다.

법치 일탈과 정략적 수사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다. 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요즘 억울한 일이 있어 고소 고발을 해도 시비를 가려 수사할 능력이 없다”고 한탄했다. 유능한 수사 인력 대부분이 직접 수사에 차출됐기 때문이란다.

청와대 민정수석과 특별감찰관 사건까지 안게 된 검찰은 이번이 정의와 법치를 다시 잡는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수사 초입부터 ‘편파’ 논란이 일고 있는데, 봐주기, 감싸기, 정략적 뒷거래, 부실 등과 같은 결과가 나오면 외부로부터의 검찰 개혁 압력을 피할 방법이 더는 없을 것이다.

정위용 오피니언팀 차장 viyonz@donga.com
#유흥주점 불법 영업#정운호 게이트#대우조선해양 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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