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상훈]냉정히 따져 본 ‘부자’ 증세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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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경제부 차장
이상훈 경제부 차장
“얼마 만에 보는 사이다 정책인가.”

지난주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세법 개정안 기사에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거대 야당의 화끈한 정책에 일부 누리꾼이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부자에게 세금을 거둬 복지에 쓰겠다니 누리꾼들이 열광할 만하다. 하지만 조금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더민주당 부자증세안은 포장만 요란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선 고소득자 증세 방안부터 이런 조짐이 보인다. 더민주당은 과세표준(연봉에서 소득공제 금액을 뺀 수치) 5억 원을 초과하는 구간의 세율을 38%에서 41%로 올리겠다고 했다. 한마디로 ‘많이 버니 세금 더 내라’는 거다.

통쾌해 보이지만 실제 효과는 미미하다.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과표 소득이 5억 원을 초과하는 납세자는 봉급생활자 6336명, 개인사업자 1만7396명이다. 고액 연봉자 상당수는 금융소득이나 부동산 임대수입 등이 많은 사업자와 중복된다. 따라서 둘을 합치면 2만 명 정도가 연 5억 원 이상을 버는 납세 대상자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소득을 모두 더하면 21조6565억 원이고, 세율 41%를 적용하겠다는 5억 원 초과분은 15조6147억 원 정도다. 세율을 3%포인트 올리면 늘어날 세금은 4684억 원이다. 대략 상위 부자 2만 명에게 연 4500억 원 안팎을 더 거둬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국내 경제활동인구가 2756만 명이니 증세 대상은 상위 0.07%다. 정부가 올해 거둬들일 세금이 233조 원이니 세수는 0.2% 정도 증가하는 셈이다. 극단적 편 가르기의 대가치고는 좀 ‘미미’하다.

더민주당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세금을 부담하는 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더민주당은 과표 1억5000만 원 초과자들의 실효세율(26%)이 과표 1200만 원 이하자(0.2%)보다 130배나 높다는 말은 빼놓았다. 소득세를 1원도 안 내는 전국 근로자 48.1%(802만 명)에 대해서는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대기업 증세는 어떨까. 더민주당이 법인세를 더 물리겠다는 과표 500억 원 초과 법인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에 440곳이다. 이들의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리면 세수는 3조5098억 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440개사가 낸 법인세는 23조9793억 원이다. 이들이 내야 할 세금은 일시에 14.6%나 늘어나게 된다.

이들 기업은 추가로 부담할 세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일부 시민단체는 사내유보금을 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내유보금은 곳간에 쌓아둔 돈이 아니다. 공장을 짓거나 설비를 구입하거나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데 들어가는 자금 등을 통칭하는 회계 용어일 뿐이다. 그렇다면 440개 기업은 기계를 팔거나, 직원 급여를 낮추어야 할까. 이도저도 안 되면 순이익이 줄어드는 걸 감수해야 할까. 어떤 선택을 해도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짓이다. 혹시 총수를 비롯한 임원들이 세금을 떠안을 수 있을까.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에서 5억 원 이상을 받은 임원이 497명, 이들의 총 보수는 6325억 원이다. 이들이 작년에 번 돈을 몽땅 뺏는다고 해도 늘어날 법인세의 5분의 1도 못 채운다.

대선을 1년 4개월 앞둔 현재 시점에 세금정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유권자로서 반길 일이다. 하지만 건설적인 논의로 진전되지 못한 채 ‘사이다 공약’에 머문다면 문제다. 유권자는 이제부터라도 슬로건이 선명할수록, 속 시원하다고 느껴질수록 계산기를 꺼내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세금은 네 몫, 복지는 내 몫’이라는 정치적 선동의 비극적 결말을 남유럽 재정위기에서 생생히 목격한 게 불과 6년 전이다.

이상훈 경제부 차장 january@donga.com
#더불어민주당#세법 개정안#사이다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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