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더불어민주당이 발표한 세법 개정안 기사에 이런 댓글들이 달렸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거대 야당의 화끈한 정책에 일부 누리꾼이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답답했던 가슴이 뻥 뚫린다’는 반응을 보인 것이다. 부자에게 세금을 거둬 복지에 쓰겠다니 누리꾼들이 열광할 만하다. 하지만 조금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더민주당 부자증세안은 포장만 요란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우선 고소득자 증세 방안부터 이런 조짐이 보인다. 더민주당은 과세표준(연봉에서 소득공제 금액을 뺀 수치) 5억 원을 초과하는 구간의 세율을 38%에서 41%로 올리겠다고 했다. 한마디로 ‘많이 버니 세금 더 내라’는 거다.
통쾌해 보이지만 실제 효과는 미미하다.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과표 소득이 5억 원을 초과하는 납세자는 봉급생활자 6336명, 개인사업자 1만7396명이다. 고액 연봉자 상당수는 금융소득이나 부동산 임대수입 등이 많은 사업자와 중복된다. 따라서 둘을 합치면 2만 명 정도가 연 5억 원 이상을 버는 납세 대상자가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의 소득을 모두 더하면 21조6565억 원이고, 세율 41%를 적용하겠다는 5억 원 초과분은 15조6147억 원 정도다. 세율을 3%포인트 올리면 늘어날 세금은 4684억 원이다. 대략 상위 부자 2만 명에게 연 4500억 원 안팎을 더 거둬들일 수 있다는 얘기다.
현재 국내 경제활동인구가 2756만 명이니 증세 대상은 상위 0.07%다. 정부가 올해 거둬들일 세금이 233조 원이니 세수는 0.2% 정도 증가하는 셈이다. 극단적 편 가르기의 대가치고는 좀 ‘미미’하다.
더민주당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세금을 부담하는 건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더민주당은 과표 1억5000만 원 초과자들의 실효세율(26%)이 과표 1200만 원 이하자(0.2%)보다 130배나 높다는 말은 빼놓았다. 소득세를 1원도 안 내는 전국 근로자 48.1%(802만 명)에 대해서는 뾰족한 해법을 내놓지 못했다.
대기업 증세는 어떨까. 더민주당이 법인세를 더 물리겠다는 과표 500억 원 초과 법인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에 440곳이다. 이들의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올리면 세수는 3조5098억 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440개사가 낸 법인세는 23조9793억 원이다. 이들이 내야 할 세금은 일시에 14.6%나 늘어나게 된다.
이들 기업은 추가로 부담할 세금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일부 시민단체는 사내유보금을 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사내유보금은 곳간에 쌓아둔 돈이 아니다. 공장을 짓거나 설비를 구입하거나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M&A)하는 데 들어가는 자금 등을 통칭하는 회계 용어일 뿐이다. 그렇다면 440개 기업은 기계를 팔거나, 직원 급여를 낮추어야 할까. 이도저도 안 되면 순이익이 줄어드는 걸 감수해야 할까. 어떤 선택을 해도 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짓이다. 혹시 총수를 비롯한 임원들이 세금을 떠안을 수 있을까. 지난해 코스피 상장사에서 5억 원 이상을 받은 임원이 497명, 이들의 총 보수는 6325억 원이다. 이들이 작년에 번 돈을 몽땅 뺏는다고 해도 늘어날 법인세의 5분의 1도 못 채운다.
대선을 1년 4개월 앞둔 현재 시점에 세금정책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것은 유권자로서 반길 일이다. 하지만 건설적인 논의로 진전되지 못한 채 ‘사이다 공약’에 머문다면 문제다. 유권자는 이제부터라도 슬로건이 선명할수록, 속 시원하다고 느껴질수록 계산기를 꺼내 냉정히 따져봐야 한다. ‘세금은 네 몫, 복지는 내 몫’이라는 정치적 선동의 비극적 결말을 남유럽 재정위기에서 생생히 목격한 게 불과 6년 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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