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민경]하이힐 수난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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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올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나의 관심을 끈 건 몇몇 여배우의 사진이다. 황금종려상을 받은 켄 로치 감독이나 한국 영화가 받은 관심에 비하면 ‘사소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우선 할리우드 스타 줄리아 로버츠가 맨발로 레드 카펫의 계단을 오르는 장면. 검은 하이힐 부츠를 신은 그 유명한 ‘귀여운 여인’의 포스터 이후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 자신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지만 언론은 하이힐을 신지 않은 여배우의 출입을 막은 영화제에 대한 야유라고 해석했다. 관절이 아파 신은 굽 낮은 구두가 거부됐다고 하니, 사실상 ‘젊음’에 대한 또 다른 규정인 셈이다.

‘드레스 코드’ 마케팅이 극성을 떨자 이를 ‘보란 듯’ 위반하는 배우들도 많아졌다. 올해 칸에선 사회 문제에 대해 자주 발언해 온 수전 서랜던이 납작한 구두에 검은색 바지 정장으로 레드 카펫에 섰고, ‘곡성’의 주인공 천우희도 바지 정장을 입어 화제가 됐다. 그녀는 다른 여배우와 같은 드레스를 동시에 입은 ‘굴욕의 협찬’ 사건을 겪은 바 있어 국내 디자이너의 바지 정장을 선택한 것은 배우로서의 자존감을 우선시한 결과로 보였다.

근대 이후 바지, 드레스, 코르셋, 하이힐 등은 여성 운동의 역사를 반영해 왔다. 특히 줄리아 로버츠의 맨발 입장으로 여성 차별의 상징이란 ‘누명’을 쓴 하이힐로서는 꽤 억울한 사연이 있다. 현대 하이힐의 원형은 1950년대에 등장한 스틸레토(stiletto)로, 송곳 같은 철심을 박은 뒷굽과 뾰족한 앞코가 특징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스틸레토는 ‘단검’이란 뜻이니 스틸레토와 하이힐의 운명을 예감한, 서늘한 작명이었다.

스틸레토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회복하려는 사회 분위기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굽이 점점 높아지자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젊은 여성들의 편애를 받았고, 가정에서 나와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의 신발로 의미가 전복된다. 영화에서 여성이 스틸레토를 벗는 동작은 스스로 성적 결정을 했다는 당시의 흔한 은유였고 이후 하이힐은 ‘팜 파탈’의 신분증이 된다. 하이힐은 건강상의 이유뿐 아니라, 유한계급의 패션이라거나 가슴과 엉덩이를 강조한다고 여성주의 진영의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신발 제작 기술의 발전과 여성 지위의 상승이 하이힐을 살려냈다. 무엇보다 몸을 숨기거나 남성을 흉내 낼 필요를 느끼지 않게 된 여성 자신의 의식 변화가 컸다. 그렇지만 여전히 하이힐을 신은 여성은 권력 지향적으로 보이거나 멍청한 부류로 보일까 봐 걱정하고, 맨발이거나 운동화를 신은 여성은 여성성을 혐오하는 사람이란 인상을 줄까 봐 신경을 쓴다. 칸에서 ‘맨발 투혼’을 보인 또 다른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하이힐은 매우 아름다운 패션이다. 단지, 굽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굳이 설명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하이힐을 신어 보면 안다. 여성으로 사는 것이 자연스러움과 얼마나 멀리 있는 삶인지.

칸의 기자회견 중 ‘페미니스트 주먹’ 문신이 드러나자 ‘나는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이란의 톱스타 타라네 알리두스티의 가냘픈 팔도 잊을 수 없다. 그녀가 잘 살 수 있기를.

최근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 록산 게이는 “페미니즘은 집단적 노력뿐 아니라 개개인의 변화된 행동을 통해서도 성공할 수 있다”며 ‘부족하나마(‘나쁜’이란 이런 의미다)’ 페미니스트로 살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바로 칸의 훌륭한 배우들이 말하려는 바일 것이다.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holden@donga.com
#칸 국제영화제#줄리아 로버츠#하이힐#드레스 코드#곡성#천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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