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태훈]‘슬픈’ 총선 올림픽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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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훈 정치부 차장
황태훈 정치부 차장
그때는 감동이었다. 1등과 꼴찌 모두 박수를 받았다. 눈물겨운 준비 과정이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2008년 베이징, 2012년 런던 올림픽 현장을 지켜보던 순간이 그랬다.

베이징 대회 당시 ‘국민타자’ 이승엽은 “후배들에게 미안해서…”라며 울먹였다. 일본과의 4강전에서 결승 2점포를 쏘아 올린 직후였다. 전날까지 1할대 빈타로 팀에 도움을 주지 못한 게 마음고생이 됐던 것이다. 그의 모자 안쪽에는 ‘금메달’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절실함으로 한국 야구는 최강 쿠바까지 누르고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4년 뒤 런던 대회에선 ‘마린보이’ 박태환의 눈물이 있었다. 금메달 0순위였던 그는 수영 자유형 400m 예선에서 어이없는 실격 판정을 받았다. 한국 대표 선수단의 항의 끝에 판정은 가까스로 번복됐다. 박태환은 이튿날 결선에 올랐지만 라이벌 쑨양(중국)에게 뒤져 2위에 머물렀다. 올림픽 2연패의 꿈도 좌절됐다. 그는 인터뷰를 하던 중 끝내 고개를 숙인 채 흐느꼈다. 기자도 가슴이 먹먹했다.

각본 없는 드라마를 쓰는 올림픽의 해 4월엔 총선이 치러진다. 두 행사 모두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이벤트다. 국민적인 관심사라는 점도 닮았다.

그러나 총선에선 감동도 눈물도 느끼기 어렵다. 본선(선거)에 앞서 예선(공천)부터 온갖 줄 대기와 암투가 벌어진다.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페어플레이(공정한 경쟁) 정신은 간데없다.

2008년 18대, 2012년 19대 모두 여당이 과반의석(각각 153석, 152석)을 차지했지만 공천 과정은 시끄러웠다. 18대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친이(친이명박)계가 공천권을 휘둘러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이 대거 탈락했다. 당시 박근혜 대표는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강력 반발했다. 19대 때는 반대로 친박계의 전략 공천으로 친이계 의원들이 줄줄이 떨어졌다. 사실상 보복 공천이었다.

브라질 리우 올림픽을 앞둔 올해 20대 총선 공천은 ‘막장의 끝’을 보여줬다. 친박계 완장을 찬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비박계 의원들을 무자비하게 털어냈다. 컷오프(공천 배제) 된 의원들은 무소속으로 여당에 칼을 겨눴다. 그 사이 김무성 대표는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했다. 일부 의원 공천의 직인 찍기를 거부한 게 전부였다.

여야 모두 선거운동 막판에는 포옹하고 무릎을 꿇는 사죄 퍼포먼스를 벌이며 남 탓만 했다.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매번 총선 때마다 계파 간 갈등이 분당(分黨) 수준으로 치닫다가 선거 직전 계산적으로 봉합하는 사이클이 반복된 것이다.

“국가가 길을 잃었다.” 한 정치학자의 진단이다. 그는 총선에서 누가 승자인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국회가 이제라도 머리를 맞대고 나라를 바로잡을 정책을 고민해야 한다는 거였다.

13일 아침 투표를 마치고 나오다 우연히 한 노부부의 대화를 들었다. “그들만을 위해 국민이 들러리 서는 건 아닌지….” 20대 국회도 기대할 게 없다는 얘기로 들렸다. 이날 여당은 다수 의석을 확보했다. 그러나 야당의 분열 덕분이지 결코 여당이 잘해서 찍어준 게 아니라는 민심의 지적이었다.

‘미우나 고우나 국회의원은 우리의 얼굴이고 우리의 수준입니다.’ 12일 본보 지면에 한 대한민국 국민이 게재한 광고 제목이다. 그는 “국회를 권력투쟁의 운동장으로 만들 사람들 말고 염치를 알며, 고마워할 줄 알고, 청렴 성실 정직하려 애쓰는 이들을 골라보자”고 적었다. 차선(次善)이 아닌 차악(次惡)이라도 찾자는, 슬픈 총선 올림픽의 자화상이었다.

황태훈 정치부 차장 beetlez@donga.com
#20대 총선 공천#컷오프#이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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