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치영]아빠들의 자녀교육 관심 무용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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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영 경제부 차장
신치영 경제부 차장
얼마 전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아빠들이 만나는 모임에 갈 일이 있었다. 애들 교육에 대해 한참 진지한 대화가 오가고 있는데 서울 강남에 사는 한 참석자가 “꼭 그렇게 공부를 시켜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운을 뗀 뒤 요즘 강남의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서 ‘한국 교육 무용론’이 번지고 있다고 했다. “뼈 빠지게 공부시켜 뭐하나, ‘인서울’도 힘든데…. 대학 잘 보내서 뭐하나, 몇 년째 직장을 못 구해 아르바이트 신세인데…. 대기업에 취직한들 뭐 하나, 40대에 들어서면 잘릴 걱정인데….” 이런 생각에 차라리 적당히 고교, 대학 졸업시킨 후 중국에 어학연수 보내 중국어만 제대로 가르쳐서 중국인을 상대로 물건을 팔 가게를 차려주겠다는 부모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자녀 교육에 성공하려면 아빠의 무관심이 필수 요소라는데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 보면 자녀 교육에 대한 아빠의 관심은 갈수록 커지는 것 같다. 특목고 입학에 생활기록부가 얼마나 중요한지, 대입 때 자기소개서를 어떻게 써야 하는지, 문과와 이과 중 어디를 보내야 하는지 등 대화 주제는 다양하다. 특히 같은 또래 자녀를 둔 아빠들끼리 만나면 자녀 교육에 대한 정보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하지만 아빠의 높아진 관심이 자녀 교육에 꼭 도움이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교육 무용론’에 고개를 끄덕이던 다른 참석자가 ‘아빠 관심 무용론’을 주장했다. 대입 취직 결혼 모두 낙타 바늘구멍 통과하기 같은 ‘헬조선’에서 살아갈 아이들이 걱정스러워 아빠들도 자녀 교육에 관심을 보이지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아내가 공부 문제로 아이에게 잔소리할 때 잘못 끼어들면 아이는 ‘아빠까지 꼭 거들어야겠느냐’며 눈을 흘겨요. 또 아내와 애 교육 문제를 얘기하다 보면 이상하게 싸움으로 끝나죠. 내가 관심 가져봐야 부작용만 생기는 것 같아요.”

대화는 이어 ‘자식 무용론’으로 이어졌다. 고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한 참석자가 말했다. “생활비 떼고 남은 월급 전부 털어 넣고 빚까지 내가며 애들 교육시키고 나면 애들은 자기 살길 찾아가겠죠. 우리에겐 준비 안 된 노후만 남을 텐데 애들에게만 ‘올인’할 게 아니라 우리 살길 만들어 놓자고요. 예전엔 논밭에 소까지 팔아 자식 가르쳐 결혼시키면 기대어 살 수 있었지만 요즘 부모 모시고 살겠다는 자식은 천연기념물이잖아요.” 실제로 1980년 한국의 자녀들은 부모의 노후 생활비 72%를 책임졌지만 2010년에는 30%만 보탰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지금은 20%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을까.

주제가 자녀 교육에서 노후 문제로 건너뛴 게 생뚱맞긴 해도 일리 있는 말이었다. 한국의 부모들은 세계에서 가장 노후 대비가 안 된 편에 속한다. 자식 교육에 가진 것 다 쏟아붓느라 연금저축에도 제대로 가입하지 않았고 국민연금과 퇴직연금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해 25∼59세 성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50대 부부가 노후생활 필요자금으로 월 235만 원을 예상하는데 실제 준비한 자금은 89만 원에 그쳤다. 매달 146만 원이 부족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은 큰다. 하지만 노후는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다. 자녀 교육보다도 노후에 자식에게 기대지 않고 살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게 자녀들을 더 위하는 일일 수 있다. 자녀 교육에 큰 관심을 쏟다가 아이들과 관계가 나빠져 고민하는 아빠들 없으신지. 애들에 대한 관심 좀 줄이고 노후에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면 아이들과의 관계도 좋아질 것이다.

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
#아빠#자녀교육#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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