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천광암]대통령의 휴가와 경제 살리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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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산업부장
천광암 산업부장
1969년 8월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로 박정희 대통령을 초청해 취임 후 첫 한미 정상회담을 가졌다. 미국 정부가 외국 정상을 서부 해안으로 초청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정상회담은 이 밖에도 여러 가지 화제를 낳았다. 닉슨 대통령이 당시 여름휴가를 보내고 있던 샌클러멘티에서 같이 휴가를 보내자고 박 대통령 부부에게 제안한 것도 그중 하나다. 참모들 사이에서는 “한미관계를 튼튼히 할 좋은 기회”라는 의견이 많았지만, 육영수 여사가 “우리가 지금 한가롭게 휴가를 즐길 때가 아니지 않으냐”고 반대해서 결과적으로는 없던 일이 됐다.

대통령의 휴가는 단순한 휴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앞의 사례에서 보듯 때로는 중요한 외교수단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국내적으로 유·무언의 정치적 메시지를 발신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27일부터 닷새간 여름휴가에 들어갔다. 현재로선 외부 일정 없이 관저에서 조용한 휴가를 보낼 것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번잡스러운 일정에서 벗어나 푹 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익하고 의미 있는 휴가라고 생각한다. 다만 닷새 중 하루 정도는 박 대통령이 경제 살리기를 위해 ‘가벼운 나들이’에 나서 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침체의 늪에서 헤매온 내수산업은 올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라는 복병까지 만나 최악의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중소기업청 등이 지난달 9일부터 5일 동안 전국 2000여 중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절반 이상이 “지난해 세월호 사고 때보다 국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예상했고, 전통시장 매출은 지역에 따라 최대 80%까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메르스가 ‘끝물’이라고 하지만 해외관광객들의 방문이 정상화되기까지는 시차가 있을 수밖에 없어 휴가 성수기인 8월 말까지는 많은 관광지들이 파리를 날려야 할 처지다.

동아일보와 경제 5단체가 ‘국내 휴가로 경제 살리자’ 캠페인을 진행하는 이유도 소상공인들의 고통을 온 국민이 조금씩이라도 나눠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이 캠페인에는 현재 경찰청이나 국세청 같은 대형 정부기관이나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같은 대기업들이 동참하겠다고 앞다퉈 선언했다. 더 의미 있는 것은 국내 여행지로 휴가를 가거나 전통시장을 찾아가서 물건을 산 뒤 인증샷을 올리는 이벤트에 일반인들의 참여가 줄을 잇고 있다는 점이다. ‘인증샷’ 이벤트가 처음 시작된 13일부터 20일까지 약 일주일 동안에만도 1003장의 인증샷이 올라왔고 그 다음 일주일 동안에는 3배 가까운 2941장이 올라왔다.

지방으로 휴가를 떠나는 것만이 이 캠페인의 취지는 아니다. 서울에 있는 전통시장을 찾아 떡볶이를 사먹거나 생필품을 구입하는 것도 훌륭한 실천이다. 물론 박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전통시장을 많이 찾았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국내 휴가로 경제 살리자’는 열기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박 대통령이 전통시장을 찾는다는 것은 평상시와는 다른 각별한 의미가 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박 대통령이 휴가 이후 경제 살리기에 매진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혹시라도 경제 살리기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이 관저에서 외롭게 휴가를 보내는 동안 결정되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흔히 경제는 심리고, 답은 늘 현장에 있다고 한다. 한 달 뒤면 임기반환점을 돌게 될 ‘박근혜노믹스’의 성공을 위해서도 박 대통령이 이번 휴가 기간 중 전통시장을 꼭 찾아 상인들의 투박한 손을 맞잡았으면 한다.

천광암 산업부장 iam@donga.com
#여름휴가#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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