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천광암]58년 개띠, 94년 개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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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산업부장
천광암 산업부장
사람이 태어난 해의 띠로 운명을 점쳐보는 것을 당사주라고 한다. 같은 해에 태어났다고 해서 운명이 같을 리는 없다. 하지만 출생연도를 기준으로 학교에 가고, 성인이 되고, 퇴직하는 것을 감안하면 동갑내기가 함께 겪어야 할 공동의 운명이란 게 어느 정도는 있는 듯하다. “58년…” 하면 “…개띠”가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58년 개띠는 애환이 많은 세대다. 베이비붐 세대 중심부에 속해 있다 보니 언제나 사람에 치여 살았다.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공부를 했고, 사회에 나가서도 늘 좁은 문을 지나 다녀야 했다. 직장에서 중간간부가 됐을 때는 세계화와 디지털화의 소용돌이를 만나 ‘브로큰 잉글리시(Broken English)’와 ‘독수리 타법’으로 힘겹게 살아남았다. 그러다가 일부는 정년을 코앞에 두고 늦복이 터졌다. 정년이 58세인 회사에 다니는 58년생은 원래대로라면 만 58세가 되는 내년에 직장을 떠나야 하지만, 60세 정년이 의무화하면서 2018년까지 직장생활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58년 개띠가 고생을 많이 한 세대라면 70년 개띠는 억세게 운 좋은 세대다. 윤택한 유년을 보냈고 교복 자율화, 대학생 과외합법화, 해외여행 자유화와 같은 혜택을 가장 먼저 누렸다. 넓게 보면 386세대에 속하지만 1980년대 중반과 같은 치열함은 사라진 캠퍼스에서 대학생활을 했다. 대다수는 외환위기 직전에 사회에 진출해, 극심한 취업난을 간발의 차로 피하는 행운까지 누렸다.

82년 개띠는 70년 개띠보다 풍요로운 시대에 태어났지만 실제로는 더 팍팍한 청춘을 보냈다. 이들이 대학을 다닌 2000년대 초반은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뜻의 신조어 ‘이태백’이 등장하는 등 청년 실업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상했다. 비정규직이 확산되면서 82년생 개띠의 상당수는 아르바이트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뎌야 했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취업문을 두드린 2007년 ‘88만 원 세대’라는 단행본이 나온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재수하지 않고 대학에 갔다면 현재 3학년에 재학 중인 94년 개띠들의 인생은 아직 미래형이다. 앞길이 창창해야 할 청춘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그 원인 중 하나가 58년 개띠와의 ‘악연’이다. 94년 개띠의 경우 여학생들이나 군 복무를 면제받은 남학생들은 내년에, 군대에 간 남학생들은 2018년에 처음 취업문을 두드리게 된다. 58년 개띠가 정년 연장으로 혜택을 누리는 시기와 맞물린다. 정년 연장으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 기업들이 신입사원 채용을 줄일 것이라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하다. 천길 낭떠러지를 연상시키는 청년 고용절벽이 94년 개띠 앞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이런 결과는 58년 개띠가 원했던 바가 아니다. 58년 개띠와 94년 개띠가 모두 웃을 수 있는 길도 얼마든지 있었다. 일이 꼬이게 만든 것은 무책임한 정치권이다. 정치권이 임금피크제 등 청년 고용절벽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무작정 정년 연장부터 법제화하는 바람에 58년 개띠와 94년 개띠 간에 일자리를 빼앗기고 뺏어야 하는 악연이 만들어진 것이다.

정치권은 국회에 계류 중인 청년 일자리 창출 법안과 민생법안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 58년 개띠들이 현장에서 더 오래 뛰는 것이 한국 경제를 발전시키고 나아가 94년 개띠들의 일자리를 늘리는 결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58년과 94년 개띠 간의 ‘만들어진 악연’은 정치권이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한다.

천광암 산업부장 iam@donga.com
#58년 개띠#70년 개띠#82년 개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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