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박 대통령, 아사히신문과 인터뷰부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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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국제부장
허문명 국제부장
최악의 한일관계 현장을 매일 매일 생중계해야 하는 기자들의 마음은 편치 않다. 그제 발표된 ‘일본 교과서 왜곡’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막 사회문제에 눈뜨기 시작하는 중학생들에게 정부가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은 왜곡된 교과서로 가르치는 일본 사회가 과연 언론과 사상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인가 의심이 들면서도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돼온 문제를 신문 1면에 대문짝만 하게 실으면서 착잡한 마음이 오갔다.

도쿄 신주쿠 한국문화원 방화 소식(지난달 25일)을 전해 들었을 때는 더했다. 일본의 혐한(嫌韓) 감정이 극단적 테러로까지 번지는 것은 아닌지 깜짝 놀랐다가 일단 큰 피해가 없으니 최대한 차분하게 전달하자고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동아일보와 아산정책연구원 공동 여론조사 결과(2일자 보도)를 보고 ‘우리 국민이 역시 현명하고 훌륭하구나’ 하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됐다. 대다수 국민(66.6%)이 일본의 잇따른 역사 도발과 과거사 부정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한일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70.1%)는 의견도 반대 의견의 3배가 넘었다. 정상회담 지지 의견은 한일관계가 지금보다 덜 나쁘던 지난해보다 오히려 더 많아졌다.

꽤 놀랍고도 반가웠다. ‘아베는 밉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원수처럼 등 돌리고 살 수만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공감대가 국민 사이에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읽혔기 때문이다. 한국과 일본뿐 아니라 유럽 중동 아프리카에서도 이웃끼리는 사이가 좋지 않다. 싸울 것은 싸우되 협력할 것은 해야 하는 게 피차간에 숙명이다. 중국의 급속한 팽창에 따른 견제와 북한 위협에 대한 한미일 공동 협력은 한일 공통의 국가적 과제다. ‘달러 스와프’(경제위기가 왔을 때 서로 달러를 빌려주자는 약정)와 같은 경제 협력이나 문화 교류도 계속되어야 한다.

아베 정부의 후안무치와 몰상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로선 미국이 일본을 나무라며 과거사에 대한 통렬한 자기반성을 요구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 반대다. 미국은 말로는 반성을 요구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일본을 중국 견제의 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일본 편을 들고 있다. 모든 국가가 국가 전략과 이익 앞에 냉혹한 것이 국제정치의 현실이다.

결국 우리 스스로 나설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먼저 첫 단추를 끼웠으면 좋겠다.

우선 아사히신문사와 인터뷰부터 했으면 한다. 아사히신문은 아베 정부의 역사 왜곡 노선에 맞서 균형 있고 양심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언론이다. 일전에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일본의 침략사에 대한 반성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이례적으로 아사히신문사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런 그의 행보는 국제적으로 큰 공감을 얻으며 일본에 대한 비난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김영삼 대통령부터 이명박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들은 당선인 시절 혹은 취임 직후 아사히신문과 인터뷰를 했다. 이런 관례를 박 대통령이 인지하고 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취임 3년이 지났는데도 인터뷰 요청에 묵묵부답인 것은 문제가 있다. 아사히신문 서울지국 관계자는 “바람직한 한일관계를 위해서라도 박 대통령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전하고 싶다. 취임 직후부터 청와대에 계속 청을 넣고 있지만 아직 답이 없다”고 전했다.

야당과 정부, 의회와 언론과의 소통이 없어 ‘불통 대통령’이란 말을 들으면서 대통령이 얻은 것은 없었다. 한일관계도 마찬가지다. 아베는 밉지만 일본과는 만나야 한다.

허문명 국제부장 angelhuh@donga.com
#일본 교과서 왜곡#도쿄 신주쿠 한국문화원 방화#한일관계#아베#달러 스와프#아사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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