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민경]킨포크 혹은 삼시세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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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프리랜서로 일하는 후배가 미국 포틀랜드로 여행을 갔다. 후배는 “요즘 포틀랜드가 제일 핫(hot)하니까요”라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요리는 물론이고 출판, 패션, 사진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 포틀랜드를 다녀온 사람이 부쩍 늘었다.

전 세계적으로 포틀랜드라는 지명은 드물지 않은데 요즘 한국에서 ‘핫’하다는 포틀랜드는 미국 북서부 오리건 주에 있다. 과거 히피 운동이 활발했으며 현재 인구는 50만 명 남짓, 장미가 많아 ‘장미의 도시’라는 별명이 있다. ‘스타벅스’의 라이벌 ‘스텀프타운 커피’ 체인의 본고장으로 카페마다 직접 커피콩을 볶고 양조장과 개성 있는 크래프트 맥주를 만드는 식당이 많아 1인당 가장 많은 카페와 술집이 있는 도시로 꼽힌다. 가보지 않아도 꽃과 커피와 술이 있고 이를 즐기는 사람이 많은 동네라는 걸 상상할 수 있다.

매력적인 도시이되 이곳이 한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갑자기 뜬 이유는 따로 있다. 답은 포틀랜드가 바로 ‘킨포크’라는 ‘신흥 종교’의 발원지라는 데 있다. 킨포크란 ‘아는 사람들’이란 뜻이지만 요즘은 직접 키우거나 근처에서 얻은 신선한 식재료를 가지고 지인들과 소박한 식사를 나누는 일을 의미한다. 킨포크가 숭배하는 것은 느림, 자연스러움, 단순함이다. 인기 프로그램 ‘삼시세끼’가 딱 한국의 킨포크다.

2011년 네이선 윌리엄스와 케이티 설윌리엄스 부부가 포틀랜드 사람들의 삼시세끼를 킨포크란 이름으로 인터넷에 올렸다. 단순한 삶을 엄청나게 세련된 사진과 선동적인 글로 표현한 킨포크는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한국어판 킨포크도 나왔다. 세계 20개 도시에서 참가비를 내고 동시에 식사를 하는 이벤트가 열렸고 그 결과는 ‘킨포크 테이블’이라는 책으로 나왔다. 관련 상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리고 패션 브랜드도 나왔다. 골드만삭스 컨설턴트였던 윌리엄스는 뭐가 돈이 될지 정확히 알았다. 여행자들은 포틀랜드의 바로 그 킨포크 사무실을 순례하며 성공의 비밀을 엿본다.

킨포크를 비판하는 이도 많다. ‘자연에 대한 포르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잘 연출된 자연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킨포크 테이블을 보면 유기농 채소를 가꿀 수 있는 텃밭, 오염 없는 해산물을 공수해 줄 어촌의 친지, 닭과 돼지가 자유롭게 삶을 누리는 초원 정도는 가져야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도예가가 만든 무독성 식기와 유기농 면 식탁보, 그리고 가사도우미도 꼭 필요하다.

삼시세끼가 보여주듯 세 번 끼니를 차리는 일은 온전히 하루의 노동을 요구한다. 연예인들은 밥 먹는 것처럼 보이나 방송 활동을 하는 것이다. 결국 일반인들에게는 삼시세끼도, 킨포크도 환상이다. 그것이 비현실적일수록 사람들은 열광한다. 살림법으로 여러 권의 책을 낸 효재 선생이 댁에서 요리 촬영을 하다 말고 끓여낸 배추된장국을 기억한다. 음식을 만들고 난 배춧잎과 집에 있던 반건조 오징어를 넣어 ‘대충’ 국 맛을 냈는데 정말 놀라웠다. 고백하건대 그때서야 난 그를 인정했다. 생각해보면 킨포크는 일상적인 경험이다. 삼시세끼와 킨포크의 진정한 미덕은 매 끼니가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가를 깨닫게 해준 데 있지 않을까.

포틀랜드에 간 후배는 초조해했다. 한국 사람들(경쟁자들!)이 킨포크에 관한 정보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많이 소개하는 바람에 뒤늦은 게 아닌지 걱정했다. 그에게 돌아와 한국 음식을 먹으면 새로 글 쓰고 사진에 담을 것들이 보일 것이라고 장담했다. 틀림없다.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holden@donga.com
#킨포크#삼시세끼#포틀랜드#킨포크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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