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천광암]十亂과 十常侍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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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산업부장
천광암 산업부장
박근혜 대통령의 경제 살리기 행보가 좀처럼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규제를 개혁하기 위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끝장토론을 벌이고, 대기업들이 만드는 창조경제혁신센터 개소식에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는 열성을 보이고 있지만 경제는 되살아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연말정산 파동과 건강보험료 정책 난맥에서 보이듯, 이제는 경제 살리기를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국정동력마저 사라지는 듯한 조짐도 보인다.

어디에서 꼬인 것일까. 십상시와 십란(十亂)의 고사가 떠오른다. 십상시는 황제의 귀와 입을 장악하고 국정을 농단하다 후한(後漢)을 패망으로 이끈 10명의 환관을 말한다. 중국사에서 이 십상시와 가장 극명하게 대비되는 존재가 십란이다. 십란은 문왕과 그 아들인 무왕을 도와 주나라를 건국하고 태평성대를 열었던 ‘10명의 유능한 신하’를 뜻한다.

십란이라는 말은 무왕이 상나라의 폭군인 주왕을 정벌하기 위해 군사들을 모아 놓고 했던 연설에서 나왔다. 무왕은 “주왕에게는 억조(億兆)의 군사가 있지만, 나에게는 마음과 덕이 하나로 통하는 10명의 유능한 신하가 있다(有亂臣十人)”는 점을 들어 승리를 장담한다.

무왕이 꼽은 십란은 주공단, 소공석, 태공망, 필공, 영공, 태전, 굉요, 산의생, 남궁괄, 읍강 등 10명이다. 이 중 태공망은 중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군사전략가 중 한 명이었고, 소공석은 지방관의 사표(師表)로 오늘날까지 추앙받는 인물이다.

십란 중 가장 걸출했던 인물인 주공단은 군사적으로도 혁혁한 공을 세웠고 무왕이 죽은 이후에는 어린 조카를 대신해 섭정을 하면서 유교적 이상정치를 구현했다. 그는 인재를 소중히 여기기로 특히 유명했다. 무왕의 동생이자 성왕의 숙부라는 존귀한 신분이었지만 손님이 찾아오면 만사를 제쳐두고 즉시 손님을 만나러 뛰어나갔다. 목욕하다가 머리카락을 틀어쥔 채 나간 것이 세 번이고, 먹던 밥을 뱉어내고 허겁지겁 나간 것이 세 번이라는 삼착삼토(三捉三吐)의 고사가 주공 이야기다. 하루 저녁에 70명의 인재를 대면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무왕이 아버지의 위업을 이어받아 천하를 통일하고, 주공이 역사에 길이 남는 정치적 문화적 업적을 남긴 것은 유능하면서 덕이 높은 인재를 등용했기 때문이다. 혼자만의 힘이 아니었다.

박 대통령이 아무리 간절한 바람으로 경제를 살리려고 해도 혼자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경제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것이고, 정치 군사 외교 사법 교육 분야와 보조를 맞추지 않고 홀로 발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경제 살리기는 대통령이 십란과 같은 유능한 인재를 폭넓게 등용하고, 수시로 대면해서 열린 대화를 하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박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최근 곤두박질치는 데는 ‘수첩인사’ ‘문고리 권력 3인방’ ‘십상시’ 등의 용어가 상징하는 것처럼 과거의 친소관계에 얽매이는 편협한 인사가 발단이 됐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불통(不通)에 책임이 큰 비서실장과 문고리 권력 3인방을 두둔하면서 쇄신 인사에 대한 국민의 열망을 외면한 것이 지지율 하락의 도화선이라는 사실에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고소영’ ‘강부자’ ‘만사형통’ 등 잘못된 인사에서 이명박 정권의 추락이 시작됐던 것과 다르지 않다.

박심(朴心)과 민심(民心)이 멀어질 때 그 결과를 예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무왕은 이런 말을 남겼다.

“하늘은 백성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백성이 원하는 바를 반드시 따른다(天矜于民 民之所欲 天必從之).”

천광암 산업부장 iam@donga.com
#십상시#십란#박근혜 대통령#경제 살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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