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현두]올림픽 구하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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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두 스포츠부장
이현두 스포츠부장
1981년 9월 30일 밤 12시경 한동안 전국이 들썩였다. 서울이 일본의 나고야를 제치고 1988년 여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됐다는 발표가 나온 직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올림픽은 블루오션이었다. 일단 유치만 하면 남는 게 많은 사업이었다.

그로부터 30년이 흐른 2011년 7월 7일 자정이 넘어 똑같은 장면이 재연됐다. 3수 끝에 평창이 2018년 겨울올림픽 개최지로 발표됐다는 소식에 전국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한 여자 TV 앵커는 유치 소식을 전하며 눈물까지 글썽였다. 다음 날에는 올림픽이 가져다 줄 효과가 몇천억 원 아니 몇조 원에 이를 수 있다는 희망 가득한 전망들이 쏟아졌다. 이때까지도 올림픽은 여전히 수익성이 큰 사업으로 보였다. 적어도 우리 국민들에게는 그랬다.

그러나 국제 스포츠계에서 올림픽은 이미 레드오션으로 옮겨간 지 오래였다. 평창 올림픽조직위원회와 강원도는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이 현실이다. 갈수록 적자폭이 커져 개최 도시를 빚더미에 앉히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급기야 이제는 유치전은커녕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을 유치해 달라고 구걸해야 하는 형편이 됐다. 실제 평창에 이어 2022년 겨울올림픽을 유치하겠다고 신청했던 스웨덴 스톡홀름과 폴란드의 크라쿠프, 우크라이나의 리비프, 노르웨이의 오슬로는 중도에 유치 포기 선언을 했다. 스톡홀름과 폴란드는 국민들의 반대에 부닥쳤고, 오슬로는 여당의 재정 보증 거부로 뜻을 접었다. 이들 도시에 앞서 독일 뮌헨과 스위스의 생모리츠-다보스도 국민투표에 의해 유치 신청 자체가 좌절됐다.

당황한 IOC는 2022년 겨울올림픽 유치전에 남아있는 중국 베이징과 카자흐스탄의 알마티마저 스톡홀름 등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평창에 6000만 달러를 주기로 한 올림픽 준비 지원금을 2022년에는 1억 달러까지 올리겠다고 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 나온 유인책이다.

그것도 불안해 IOC는 지난해 말 올림픽 분산 개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어젠다 2020’을 공표했다. 유치 도시의 재정 부담을 줄여 줘 올림픽이 모두가 기피하는 애물단지가 되는 것을 막겠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IOC가 평창조직위원회에 분산 개최를 제안하고 경기장 사후 활용 방안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평창의 실패는 올림픽의 추락을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IOC의 판단이다.

그러나 정작 평창조직위와 강원도는 태평하다. 올림픽을 외부 과시용이나 지역 발전을 위한 행사용으로 여기는 낡은 틀에 여전히 갇혀 있는 듯하다. 20일에는 한 편의 코미디까지 연출했다. 국내 분산 개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기자간담회를 연 평창조직위는 “일본 등과의 분산 개최는 불가능하다. 더이상 거론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못을 박았다. 그러면서 경기장 사후 활용 방안을 묻는 질문에는 “4년 뒤 베이징 겨울올림픽이 열리면 그 경기장으로 활용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물론 중국의 동의를 받은 것은 아니다.

서울 올림픽 유치 추진위원장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었고, 평창 유치 추진위원장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었다. 치열한 유치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공무원보다 경쟁과 손익계산에 익숙한 기업인에게 조직을 이끌게 하는 것이 훨씬 더 경쟁력이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평창 올림픽이 ‘화이트 엘리펀트’(돈만 많이 들고 쓸모없는 것을 의미하는 영어 표현)가 아닌, 적어도 밑지지 않는 장사가 되기 위해서 평창조직위와 강원도에 지금 필요한 것은 유치 때와 같은 비즈니스 마인드다.

이현두 스포츠부장 ruchi@donga.com
#올림픽#2018년 겨울올림픽#레드오션#IO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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