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상수]같이 일하고 싶은 상사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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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 사회부 차장
김상수 사회부 차장
주니어 기자 때 큰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다. A 부장이 한 후배 기자가 쓴 기사를 손에 들고 “이걸 기사라고 썼냐”며 후배 눈앞에서 박박 찢었다. 선배가 죽으라고 하면 죽는 시늉까지 하던 시절이라 어린 마음에 어찌나 놀랐던지….

사실 신문사는 ‘상명하복’의 군기가 다른 직장보다 비교적 센 곳이다. 일반 기업은 신입사원에게 “○○씨”라고 한다던데, 신문사는 후배가 들어오면 나이가 많건 적건 “야” 또는 “○○아”라고 반말로 시작했다. 1980, 90년대에는 간혹 때리고 맞는 일도 벌어졌다. 누굴 때린 적은 없지만 고백하건대 필자도 20년 전 갓 들어온 후배 기자들을 비 오는 날, 거리에서 ‘얼차려’시킨 일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다시 A 부장 얘기로 되돌아가 보자. 기사를 찢으면서까지 후배에게 무척 엄격했던 이 양반이 후배들에게 원수가 됐을까. 오히려 그 반대였다. 구수한 경상도 사투리를 썼던 A 부장은 마감시간에는 기사와 관련해 무차별 폭격을 퍼붓는 ‘악마’와 같았지만 저녁에는 후배들과 소주잔을 기울이며 “잘했다”고 등을 두드리는 따뜻한 면모가 있었다. 후배들은 그걸 ‘진정성’이라고 느꼈다. 야단을 맞더라도 구구절절 옳은 지적만 하니 할 말이 없었다. 전문성 면에서 상대가 안 되니 반박할 여지가 없다. 그런 칼날 같은 지적이 후배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걸 알고 나면서부터는 오히려 고마움이 느껴졌다.

직장인들의 희로애락을 담은 ‘미생’이라는 드라마가 화제다. “맞아 맞아, 저거 내 얘기야”라고 할 정도의 실감나는 스토리가 인기 비결이다. 직장생활과 관련해 마크로밀엠브레인이라는 온라인 조사업체가 최근 직장인 500명을 대상으로 모바일 설문조사를 했다.

‘같이 일하고 싶은 상사’를 묻는 질문에 가장 많은 39%가 ‘업무 능력과 전문성이 높은 상사’라고 꼽았다. 이어 ‘힘든 일이 생기거나 업무가 벅찰 때 언제든지 편하게 상담할 수 있는 상사’(28.8%) ‘공과 사의 구분이 확실해 후배의 개인시간에는 관여하지 않는 상사’(24.8%)가 꼽혔다. ‘식사를 사주거나 경조사를 챙기는 등 후배들에게 잘 베푸는 상사’는 2.2%로 별 인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어떤 상사와 일하기 싫을까. 응답자의 25.2%가 ‘자신의 일을 후배들에게 다 떠넘기는 상사’와 같이 일하는 게 가장 괴롭다고 했다. ‘불평투성이인 데다 후배들을 칭찬하는 데 인색한 상사’(12.2%)가 뒤를 이었다. ‘사내 정치에만 몰두해 후배와 일은 뒷전인 상사’(11.8%)도 싫어했다.

결론을 내보자. 음, 후배들이 바라는 선배상은 이렇다. 우선 존경할 정도로 전문성과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안 그러면 후배들에게 무시받기 십상이다. 휴가와 연차, 퇴근시간을 칼같이 챙겨주면서 후배들 확실히 쉬게 해주고 형님 같은 편안함도 있어야 한다. 후배들보다 일은 2배로 해야 하고 후배가 잘할 때는 아낌없는 칭찬으로 격려도 해줘야 한다.

갑자기 이 대목에서 가수 변진섭이 부른 ‘희망사항’이 생각난다.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웃어주는 여자, 머리에 무스를 바르지 않아도 윤기가 흐르는 여자, 멋 내지 않아도 멋이 나는 여자, 뚱뚱해도 다리가 예뻐서 짧은 치마가 어울리는 여자….’

에구, 이런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나. 꿈 깨라. 당신들이 바라는 ‘같이 일하고 싶은 상사’는 세상에 없다. 다만 뭘 원하는지는 알겠다. 어리다고 무시하지 않고, 인정하고 배려해 달라는 것 아닌가. 상사분들이여,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어디에 해당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길….

김상수 사회부 차장 ssoo@donga.com
#상사#직장#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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