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영식]‘통일의 작은 통로’ 대 ‘근본 문제 해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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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정치부 차장
김영식 정치부 차장
북한이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방식의 장외 접근법에 집중하고 있다. 북한군이 최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과 군사분계선(MDL)의 모든 전선에서 정찰활동을 늘리며 교전까지 벌인 것은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에 다른 틀로 접근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좀 더 큰 틀에서 보면 남측의 ‘작은 통로’ 접근과 북측의 ‘근본문제 해결론’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프레임(frame) 전쟁’이 시작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남측은 박근혜 대통령이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밝힌 환경, 민생, 문화 분야에서 남북을 잇는 통로를 연다는 구상을 2차 고위급 접촉에서 다루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인도적 지원, 이산가족 상봉 등 작은 분야의 교류로 신뢰를 구축하면 한 단계 더 높은 남북관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능적인 접근법이다.

반면 북한은 내부적 관심사가 반영된 정치·군사적 접근법에 치중하고 있다. 북한이 대북 전단 살포에 고사총 사격으로 대응하는 것은 그만큼 체제 위협 요소들을 급박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자신들의 체제를 건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거엔 대북 전단 문제가 없었나. 왜 지금 시점에 이처럼 민감하게 나설까.

북한 내부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장성택 처형 이후 복잡한 내부 수습 과정에서 체제 안정을 위한 주도권 싸움이 벌어진 것으로 보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내부 불안 요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강경파가 주도하고 있음을 시사한 것. 아직은 북한 스스로도 체제가 안정됐다고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제적인 환경도 북한에 유리하지는 않다. 북한의 인권 문제가 유엔에서 중심적인 과제로 논의되고, 중국은 북한과 거리를 두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를 열어 ‘전작권 전환 재연기’를 결정하고 한미 외교·국방장관(2+2) 회의에서 북핵 문제와 한미동맹 강화 방안 등을 논의한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 체계 도입 문제도 거론되는 만큼 북한의 위기감이 점점 더 커질 환경만 조성되는 셈이다.

결국 체제 보존이 최대의 과제인 북한으로서는 내외 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2차 고위급 접촉의 어젠다를 북한 체제의 안전 강화 방향으로 만들려고 움직이는 셈이다.

이런 예민한 북한을 상대할 우리 안보 관련 당국의 접근법도 좀 더 신중하고 전략적인 선택지를 많이 만드는 ‘창조적’ 방식이어야 한다. 북한의 2차 고위급 접촉에 대한 변칙적 프레임에 정부의 고심도 깊을 것이다. 북한의 주장을 무시할 수만은 없지만 북한의 주장을 받아 NLL 무력화 시도나 대북 전단 살포 문제에만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측에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군사 당국 접촉으로 만족하지 못한 북한을 조금이라도 안심시켜 접촉에 나오게 만들 방안 말이다.

남북의 군사적 긴장을 관리하지 못해 고위급 접촉의 끈마저 떨어지는 상황이 된다면 현 정권 아래에선 남북 대화의 동력을 다시 찾기 어렵다. 남북 대화 자체가 목표가 될 수는 없지만 대화의 끈이 끊어지면 대화 자체가 목표인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박 대통령이 17일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아셈)에서 “우리는 대화의 끈을 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를 염두에 뒀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 덧붙이자면, 북한도 박 대통령의 뜻을 오해하지 말았으면 한다. 북한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대화에만 매달린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원하는 바가 있으면 장외 군사 도발 대신 대화의 장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게 남북 대화에 임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김영식 정치부 차장 spear@donga.com
#북한#NLL#대북 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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