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죽음의 상인’이 품은 희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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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죽음의 상인 사망(The Merchant of Death is Dead)’. 1888년 4월 13일 프랑스의 한 신문에 난 부음(訃音)의 제목이다. 기사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사람을 훨씬 더 빨리, 더 많이 죽이는 방법을 개발하여 부자가 된 알프레드 노벨 박사가 어제 사망했다.’ 당시 프랑스에 머물던 55세의 노신사 알프레드 노벨은 자신의 부음을 읽고 어떤 충격을 받았을까. 둘째 형 루드비그 노벨이 지병으로 죽었는데, 자신이 죽은 걸로 기사가 났다. 황당한 오보는 웃어넘길 수 있지만 ‘죽음의 상인’이라는 딱지는 너무 섬뜩했다.

루드비그는 당시 아제르바이잔에서 유정(油井)을 파고 송유관을 깔았으며 저유소(貯油所)를 짓고 정제기술까지 개발하여 석유사업을 일으킨 신흥 벤처사업가였다. 아제르바이잔을 한때 세계 최대의 석유생산국으로 발전시킨 주역이 바로 루드비그와 아들 에마누엘이다. 루드비그 노벨 일가는 종업원의 복지는 물론이고 문화, 장학, 사회사업을 통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몸소 실천했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재산을 뺏기고 살해당할 위험에 몰렸을 때 종업원과 주민들이 몰래 탈출시켜 줄 정도로 아제르바이잔에서 존경을 받았다.

만약 그 신문이 루드비그의 사망을 제대로 보도했다면 제목을 어떻게 달았을까. ‘아제르바이잔의 석유왕 서거’ 또는 ‘바쿠의 석유영웅 별세’쯤 되지 않았을까. 바쿠는 아제르바이잔의 수도로, 루드비그가 주로 활동했던 도시다. 다른 신문에 난 둘째 형의 부음과 자신의 부음을 비교해 본 알프레드 노벨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안전한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해 광부의 안전을 도모하고, 전쟁을 끝내는 평화의 도구로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죽음의 상인’이라는 딱지 앞에 여지없이 무너졌다.

루드비그가 죽자 그를 기념하는 상이 만들어졌다. 그의 유산을 기금으로 제정러시아기술학회가 석유산업이나 금속산업의 발전에 기여한 발명이나 기술에 주는 ‘루드비그 노벨상’이다. 1888년 만들어져 1905년 세 번째 시상을 끝으로 러시아의 정치 격변에 휩싸여 사라졌다. ‘에마누엘 노벨상’도 있었다. 루드비그의 아들 에마누엘을 기려 만든 상이다. 아제르바이잔 정부에서 석유를 비롯한 에너지산업의 발전에 기여한 기술에 주는 상이다.

루드비그의 동생으로서, 또 그 회사에 투자했던 주주로서 루드비그 노벨상을 만드는 과정을 지켜봤던 알프레드 노벨이 ‘죽음의 상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상을 제정한 것이 현재 하나 남은 노벨상이다. 물리학, 화학, 생리학이나 의학에서 중요한 발견이나 발명을 한 사람, 문학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사람, 국가 간의 우호나 평화에 가장 헌신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기금은 루드비그의 석유사업에 투자한 주식으로 마련했다.

바야흐로 노벨상의 계절이다. 노벨 일가의 사회 공헌에 대한 안목과 실천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알프레드 노벨은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 노벨상을 만들면서 그 성과에 대해 스스로 회의를 품었다. 그러면서도 희망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희망은 현실의 알몸을 가려주는 자연의 장막이다(Hope is nature's veil for hiding truth's nakedness).’

올해는 화학상에서 한국인의 수상 가능성이 매우 높게 점쳐지고 있다. 우리나라 기초과학 연구의 척박한 알몸을 가려줄 희망이 필요하다. 한국에 루드비그처럼 존경받는 기업가가 매우 적다는 현실을 가려줄 희망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알프레드 노벨#루드비그 노벨#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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