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대통령의 2인자’論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며칠 전 작은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60대 여사장을 만났다. 대화 도중 스마트폰을 꺼내 들더니 “나도 누군가로부터 받은 것”이라며 카카오톡을 열어 문자메시지를 보여주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비서실장’이라는 의혹을 받아온 정윤회 씨에 관한 내용이었다. “나도 정치권에서 두루 듣는 이야기가 많아요. 지금 청와대에서 김기춘 비서실장이 다하는 것 같지만 난 절대 아니라고 봐. 문제는 이 사람이야, 이 사람.”

기자는 ‘7시간 미스터리’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으로 논란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민심의 한편에는 아직도 핫(hot)한 관심사가 정 씨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대통령 보좌 일을 그만둔 7, 8년 전부터는 대통령은 물론이고 비서관들과도 연락을 끊고 지낸다”고 했다. 하지만 그로서는 억울하게도, 오피니언 리더들을 만나면 귀엣말을 하듯 빠지지 않고 화제에 오르는 사람이 바로 그였다. 정치와는 담쌓고 살 것 같은 의사들과의 모임에서조차 “대통령 뒤에 정 씨가 있다던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최근 한 모임에서도 화제가 됐다. 이전 정부에서 청와대 수석과 장관을 지냈던 분들과의 만남이었다. 이날도 정 씨가 화제로 떠오르면서 한 분이 이렇게 말했다. “만약 정 씨가 대통령 뒤에서 2인자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 없다고 본다. 알다시피 그는 대통령의 오랜 정치적 측근이었다. 그가 긍정적 역할을 수행한다면 무조건 백안시하거나 배제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아니라면 문제가 있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대통령의 2인자론(論)’으로 흘렀다. “어느 정권에나 2인자는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관리하느냐 하는 것이다.” “거의 절대 권력이나 다름없는 대통령중심제에서 2인자의 중요성은 말이 필요 없을 정도다. 대통령의 의사결정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점은 물론이고 2인자의 행보 자체가 약이자 독이 될 상반된 가능성을 함께 갖고 있기 때문이다. 2인자는 충성과 배신의 두 가지 코드가 있다.”

이 중 한 분이 “내 주관이 담긴 해석”이라는 것을 전제한 뒤 이렇게 말했다. 재미있는 분석 같아 옮겨 본다.

“기업에서도 그렇지만 사실 ‘2인자’란 말에는 남자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로망이 담겨 있다(웃음). 지난 정권을 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한동안 2인자의 건강성과 상호견제를 유지했지만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관리에 실패해 결국 2인자 그룹 중 한 사람의 총탄에 목숨을 잃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허화평 대통령보좌관이 2인자로 주목받았지만 이철희 장영자 사건이 터졌을 때 직언을 하는 바람에 외유를 떠났다. 이후 5공 정권은 뚜렷한 2인자가 없었던 독특한 길을 걸었다고도 할 수 있다. 2인자들의 운명은 순탄치 않았다. 노태우 대통령 때 2인자로 통했던 박철언 씨, YS(김영삼) 때 김현철, DJ(김대중) 때 박지원, 노무현 때 안희정 이광재, MB(이명박) 때 이상득 전 의원을 2인자 그룹으로 본다면 하나같이 모두 감옥에 가지 않았나.”

또 다른 전직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기업 오너든 대통령이든 1인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2인자 누구도 자기 분수 이상의 일을 하지 않도록, 즉 내부 권력투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며 또 부패와 연결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현 정부 내 2인자 그룹을 꼽는다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김기춘 비서실장도 포함될 텐데 김 대표는 정치적 리더급이고 김 실장은 경험 많은 관리자형이라는 점에서 캐릭터가 겹치지 않는다. 그 점은 다행이다. 어떻든 어느 정권이나 그랬지만 박 대통령의 2인자 관리 능력이야말로 정권 성공의 또 다른 열쇠일 수 있다.”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
#정윤회#2인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