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현두]反轉의 秘器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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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두 스포츠부 차장
이현두 스포츠부 차장
프로 스포츠는 스토리를 파는 산업이다. 스토리를 많이 생산하는 선수는 스타가 되고, 그러지 못하는 선수는 퇴출된다. 극적인 스토리와 그것을 만들어낸 선수는 기록과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영원히 남는다.

그런 면에서 올해 프로야구에서 최고의 상품 제조기는 염경엽 넥센 감독이다. 1위부터 3위까지의 팀 순위가 일찌감치 결정되는 바람에 스토리 가뭄을 겪고 있는 올 시즌 박병호와 강정호의 한집안 홈런왕 경쟁, 밴헤켄의 투수 3관왕 도전, 팀 창단 6년 만의 첫 우승 도전 등 꾸준하게 스토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크게 보면 염 감독 스스로가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염 감독의 스토리는 울림도 크다. 반전(反轉)이 있기 때문이다. 2년 전 염 감독이 넥센 감독으로 선임됐을 때 그의 성공 신화를 예측한 야구계 인사는 거의 없었다. 언론의 전망도 물음표가 대부분이었다. 프로선수 10년 동안 타율 0.195를 기록한 후보 선수 출신인 데다 코치로서 지도력을 인정받을 만한 눈에 띄는 성과를 낸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감독 부임 첫해부터 ‘스타 선수 출신의 지도자는 성공하지 못한다’는 오래된 스포츠계 징크스를 입증하는 사례에 자신의 이름을 더했다. 무명 선수 출신으로 성공한 지도자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다. 이 징크스를 설명하는 이유는 많다. 그중 가장 많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눈높이’다. 슈퍼스타 출신의 한 농구 감독은 훈련 때마다 선수들 앞에서 직접 슛을 던져서 성공시킨 뒤 “도대체 왜 이렇게 못하는 건지 모르겠네”라고 말했다. 오래지 않아 그 감독은 성적 부진으로 물러났다. 스타 선수 출신의 한 프로야구 감독은 투수가 볼넷을 내줄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왜 스트라이크를 못 던지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지도자로 성공하지 못한 스타 출신 감독들의 대부분은 선수 평가의 기준을 자신의 선수 시절 기량에 맞춘다. 자신과 같은 스타가 될 수 있는 선수는 100명 중 1명도 되지 않는다는 현실은 보지 않고서 말이다. 당연히 요즘 유행하는 말인 선수와의 소통은 설 자리가 없다.

반대로 뛰어난 지도력으로 배구계의 제갈공명으로 불리는 신치용 삼성화재 감독은 “선수 시절 나는 벤치 멤버였다. 그래서 주전은 물론이고 비주전 선수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선수들과 진솔한 대화를 할 수 있고 그것이 나의 강점이다”고 말한다. 염 감독도 다르지 않다. 2군 선수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고 선수들과의 대화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경기 전 기자들과 인터뷰하는 중에도 앞을 지나가는 선수가 있으면 불러 세워 잠깐이라도 얘기를 나눌 정도다. 넥센 선수들은 “감독님은 항상 믿는다는 말을 자주 해준다. 선수들을 잘 이해해 준다”고 말한다.

물론 징크스를 피해가는 감독도 많다. 프로야구 삼성 류중일 감독도 그중 한 명이다. 고교 시절부터 스타였던 그는 감독으로서도 삼성을 프로야구 통합 3연패로 이끌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또 다른 의미에서 반전 스토리다. 한국 야구 사상 최고의 유격수 중 한 명으로 꼽히는 류 감독이지만 경기 중 선수들의 수비 실책에 얼굴을 찡그리는 일은 거의 없다. 한 프로야구 단장은 “류 감독은 스타 출신인데도 눈높이를 낮춰 선수들과 소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소통으로만 보면 류 감독과 염 감독이 감독들 중 최고다”고 말했다.

류중일과 염경엽, 두 감독이 반전 스토리를 만들어낸 비기(秘器)가 스포츠에서만 통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현두 스포츠부 차장 ruch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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