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민경]다이애나 비, 힐러리 그리고…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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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매달 20일 무렵 새 달의 여성지들이 서점에 나오면, 나는 타짜의 눈빛으로 흐읍, 숨을 멈추고 ‘이달의 표지’들을 하나씩 찾아본다. 머리로는 큰 제목을 훑지만, 감각이 반응하는 건 표지 사진과 디자인이다.

표지는 잡지의 진정성과 완성도와 열정을 한눈에, 정직하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사진과 제목, 디자인 등 표지 위의 모든 것이 책의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의 내용과 ‘신경’으로 촘촘히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잡지를 만들면서 가장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표지 제작을 할 때다. 가장 큰 고민은 누구를 표지인물로 할 것인가다. 일반적으로 패션지는 모델을, 여성동아 같은 여성지는 여성 연예인을 표지에 올린다. 표지에 전문모델이 등장하면 그건 옷을 봐달라는 얘기다. 연예인이나 유명 인사가 나오면 그의 삶이 표지에 스며들어 잡지의 정체성을 만든다. 따라서 물의를 빚은 인물은 톱스타라도 일단 제외다. 결혼하고도 젊음과 인기를 잘 관리한 여성 연예인이 표지인물 0순위로 뽑히는 건 잡지의 소비자들이 ‘이상형’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최근엔 예쁜 아이를 갓 낳은 ‘출산 연예인’ 주가가 크게 올랐다.

극단적으로는 표지에 덩그마니 화장품 병 한 개가 올라오기도 한다. 잡지사에서 화장품 회사에 아예 표지를 내준 것이다. 표지 때문에 끙끙거리던 중 표지를 광고로 채운 잡지 관계자를 만나 “편하시겠다”고 하니 “불황에 오죽하면 그랬겠어요. 표지 고민하던 때가 그리워요”라는 답을 듣고 같이 우울해지기도 했다.

1990년대에 미국 ‘바자’의 편집장이었던 리즈 틸버리스(1999년 난소암으로 사망)가 쓴 책이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됐는데, 그 역시 “매달 가장 하기 힘든 결정은 커버 사진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표지인물은 예쁘기만 해서는 안 되고 ‘약간 공격적인 쪽’이 매출에 도움을 주며 톱스타 중에서도 마돈나와 데미 무어가 ‘이름값을 해주었다’고 평했다.

틸버리스 최고의 ‘히트작’은 영국 ‘보그’ 편집장 시절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올린 표지였다. 왕실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직접 사진을 고르는 순간 그는 편집장으로서 ‘최고’의 순간을 맛봤다고 기억했다. 당시 틸버리스의 경쟁자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잘 알려진 미국 ‘보그’ 편집장 애나 윈투어였는데, 흥미롭게도 그가 만든 최고의 표지는 대통령 부인 힐러리 클린턴을 모델로 한 1998년 12월호로 꼽힌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의 스캔들로 백악관의 권위가 추락한 가운데 대통령 부인이자 현명한 여성 정치인의 이미지를 극대화한 표지사진이 공개되자 보그는 최고의 판매부수를 기록했다. 패션지임에도 양쪽 모두 최고의 커버는 비(非)연예인에서 나왔던 셈이다.

잡지는 정치나 사회의 영역 밖에서 태어나 성장해왔다. 하지만 잡지는 사회를 반영한 거울 같은 것으로, 잡지가 제안하는 삶의 모습은 대단히 정치적이다. 여성지 최고의 표지 인물은 타고난 미인이 아니라 인생을 아름답게 돌파하는 여성들이다. 매월 표지를 기획할 때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나 힐러리가 없는지 찾게 되는 이유다. 당연히 여성 대통령도 후보군이다. 표지인물이 됐을 때 웃는 모습이 아름다울지, 약간 공격적인 눈빛일지, 당대의 트렌드를 소화하는 감각을 갖고 있을지, 그리하여 책 판매에 도움이 될지 따져본다. 아직까지는 ‘이름값을 톡톡히 해줄 인물’을 찾지 못했다.

김민경 여성동아 편집장 holden@donga.com
#표지#제목#디자인#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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