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희균]반장이 뭐길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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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주부 A 씨는 지난달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아들이 오른팔에 ‘선거’라는 완장을 차고 집에 들어선 모습을 보고 의아했다. 아이는 책가방을 집어던지고 다짜고짜 종이학을 수십 마리 접더니 일일이 ‘○○○은 우리 반을 가장 잘 이끌 인재입니다’라고 썼다.

아들은 반장 선거 후보 3명 중 한 명의 선거 운동원이 됐다고 했다. 그 후보의 엄마는 날마다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주면서 누구는 등굣길에 피켓을 만들어 흔들고, 누구는 종이학을 접어 날리고, 누구는 홍보 전단을 나눠 주도록 시키는 모양이었다.

아들에게 “○○○이랑 친하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했다. 후보마다 선거 운동원 무리가 갈리기 때문에 어딘가에 끼지 않으면 따돌림을 당할까 봐 걱정하는 듯했다.

대한민국에서 초중고교를 다녀본 이라면 누구나 당연한 존재로 여기는 반장. 그런데 얼마 전 외국에서 몇 년 머물다 돌아온 초등학교 선생님을 만났다가 뜻밖의 얘기를 들었다. 외국 학교에는 대부분 우리와 같은 반장 제도가 없다는 것이었다.

반장의 유래가 궁금해져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예전에 교육기관에서 교실을 한 단위로 하는 반을 대표하여 일을 맡아보던 학생’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왜 과거형일까?

교육학 교수에게 물었더니 이런 설명이 돌아왔다. 영국에서 산업혁명 당시 갑자기 수많은 아이들이 학교로 몰리자 한 반에 대규모 아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나온 제도라고 했다. 교사 한 명이 나이도 수준도 제각각인 수백 명을 감당할 수 없어서 우수한 아이를 골라 보조교사로 삼는 방식이었다. 학급당 학생 수가 줄고, 나이가 같은 아이들이 한 반을 이루면서 이런 제도는 자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 급장에서 비롯된 제도가 아직 이어지고 있다. 옛날에는 교사가 성적이 좋은 학생을 임명했지만, 1980년 문교부가 학도호국단 간부를 선거제로 바꾸면서 반장도 선거제로 바꾼 정도가 달라진 점이랄까.

요즘은 반장 대신 학급회의를 이끈다는 의미에서 회장을 두거나, 학급 도우미라는 용어를 쓰는 학교도 있다. 이름은 바뀌어도 반장의 역할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반장이 하는 일이라면 많은 사람들이 ‘칠판에 떠든 사람 이름 적기’를 떠올리는 것처럼 대체로 급우를 통제하는 역할이다.

초중학교 반장들을 대상으로 ‘반장의 역할’에 대해 연구한 논문들을 모아 보면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주로 통제, 감독, 담임 보조, 질서 유지 등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동안 각종 입시에서 반장 경력이 있으면 리더십전형 지원 자격을 주거나, 친화력이나 봉사정신을 높이 평가했던 것이 이런 능력을 기대했기 때문일까.

앞서 말한 선생님은 새로 부임한 학교에서 반장을 없애보려 했다가 학부모들의 반대로 무산됐다고 했다. 반장 경력이 사라지면 다른 학교에 비해 스펙 쌓기에 불리하다는 이유에서다. 반장이 없으면 급식이나 교통지도를 맡아 줄 이른바 ‘임원 엄마’까지 사라질까 봐 우려하는 교사도 일부 있다고 했다.

신학기만 되면 과열 반장 선거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주로 성적이나 가정환경에 따라 아이들의 지위가 갈리는 것이 교육적인지도 의문이다.

민주적인 학급회의 운영이 필요하다면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회장을 맡는 것이 훨씬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리더십을 발현할 장이 필요하다면 저마다 좋아하고 잘하는 분야에서 자발적으로 모임을 꾸리도록 도우면 될 일이다. 한 반 학생이 20∼30명으로 줄어든 상황에서 과연 지금과 같은 형태의 반장 제도가 유지돼야 하는지 고민해볼 때가 됐다.

김희균 정책사회부 차장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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