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성원]‘쓰리데이즈’와 청와대 무인기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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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대통령이 휴가로 찾은 청수대에 전자기파(EMP)탄이 터지며 전력이 끊기고 모든 전자장비가 먹통이 됐다. 이 틈을 타 경호실장 등이 대통령을 저격한다. 대통령은 화를 면했으나 내부에까지 깊숙이 침투한 군산복합체 세력의 위협은 계속된다….

SBS에서 방영 중인 수목 드라마 ‘쓰리데이즈’의 스토리 라인이다. 처음엔 황당한 상황 설정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청와대 상공에까지 북한의 무인기가 날아와 초단위로 사진을 찍어 북으로 귀환하려다 파주에서 추락한 것을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 우리 현실이 어쩌면 드라마적 상상력을 뛰어넘은 곳에 놓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섬뜩하게 느껴졌다.

북한의 무인기는 이미 2012년 4월 김일성 생일 100주년 열병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대남(對南)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지난해 5월 ‘무인기의 청와대 타격 가능성’이라는 글을 싣기도 했다. 300여 대의 북한 무인기가 실전 배치돼 남한 상공을 휘젓고 다니는데도 한미연합사와 합참의 작전예규엔 무인기 대책이 들어 있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자폭용 대신 정찰용 무인기만 발진시킨 ‘친절한 정은 씨’의 배려심에 감사라도 해야 할 판이다.

돈 몇 푼 더 있다고 전쟁의 승리를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군은 긴 창과 두꺼운 갑옷으로 중무장하고도 원시적인 투석기로 맞선 시칠리아 경보병들에게 섬멸됐다. 1000만 원짜리 무인기가 서울 심장부의 국군통수권자 처소까지 뚫고 들어오고,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의 군사시설을 지그재그로 훑으며 유린할 때까지 군(軍)은 손 한번 써보지 못했다. 비판에 몰리니까 “우리도 30억 원짜리 무인기를 갖고 있다”고 공개하고 나선 것이 국민을 더 화나게 한다.

군만 탓할 일도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북한의 도발을 ‘내재적 접근법’으로 변호하려는 친북 좀비들이 곳곳에 진을 치고 있다. 북한 국방과학원 대변인이 “무인기 소동은 (남조선 당국의) 상투적 모략소동”이라며 쏘아댄 성명과 좌파 성향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6·4지방선거를 노린 한국 정부의 자작극’이라는 식으로 쏟아내는 음모론은 일란성 쌍생아처럼 쏙 빼닮았다. 4년 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이 ‘북한에 의한 폭침’이라는 공식 조사 결과를 발표했을 때도 일부 야당 정치인은 “골프로 치면 5연속 홀인원을 해야 가능한 일”이라며 북한 소행을 부인하기에 바빴다.

김성호 전 국가정보원장은 며칠 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초·재선 의원 모임에서 이석기 사건을 들며 “국회에 북한 당국자들이 앉아 있다는 인상”이라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공산주의 이론가 안토니오 그람시의 ‘진지전’을 거론하며 “법원에도, 검찰에도, 언론기관에도 (북한 세력이) 없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생전에 남한 내 간첩과 종북세력 규모를 5만 명 정도로 추산했다. 북을 ‘심장의 조국’으로 여기는 이들이 북의 기동전과 연계되는 순간 이 나라의 운명은 드라마 ‘쓰리데이즈’에서 쫓기는 대통령의 신세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종북세력보다 무서운 내부의 적은 번번이 북한의 신종 기습공격에 눈뜨고 당한 뒤 예산타령이나 하는 군과 정보기관의 무능이다. 여기에 ‘설마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빈사 상태의 북한에 당하겠느냐’는 정부, 정치권의 오만과 만났을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는 4년 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 때 똑똑히 목도한 바 있다. 천안함 장병 46명의 피로 얼룩진 통한의 교훈을 못 살리고 정보에도 경계에도 실패한 ‘서울상공 습격사건’의 지휘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대한민국 방어 시스템에는 또 구멍이 뚫릴 것이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무인기#북한#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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