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영식]‘2+2=5’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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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국제부 차장
김영식 국제부 차장
‘2+2=5’

단순한 수식 문제로는 틀린 답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수식만큼 역사적 맥락에 따라 그 의미가 다양하게 전개된 사례도 드물 것 같다.

최근 용법은 미국 국무부가 우크라이나 사태를 두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국무부는 지난달 초에 낸 자료에서 “우크라이나에서의 불법 행동을 정당화한 푸틴의 말은 도스토옙스키가 ‘2+2=5’ 수식에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지하에서 쓴 수기’·1864년)고 한 이후 처음 나온 놀랄 만한 러시아의 허구”라고 했다. 크림 반도에서 군사작전에 나선 이들이 현지 자경단이라는 러시아의 주장 등은 소설 같은 얘기라고 일축한 것이다. 서방에선 자경단이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산하의 특수부대 스페츠나즈일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법의 아버지로 불리는 네덜란드의 법학자 휘호 흐로티위스(1583∼1645)도 이 수식을 언급했다. 그는 “신이 없다고 할지라도 ‘A=A 또는 2+2=4’라는 자연적 진실로서의 정의가 존재한다”며 자연법을 국제법의 기초로 내세웠다.

조지 오웰은 ‘2+2’의 답이 4라는 것을 자유와 연관시켰다. 그는 ‘1984’에서 주인공 윈스턴의 입을 통해 “(빅브러더의 거대한 힘이 투영된) 당(黨)이 둘 더하기 둘은 다섯이라고 발표해 모든 사람이 그렇게 믿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과거사를 지속적으로 조작하는 사회에서 윈스턴에겐 ‘4’라는 답이 자명한 진실이며 보호받아야 할 명제였다.

1852년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나폴레옹 3세가 쿠데타로 자유의 가치를 훼손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거에서 그에게 표를 몰아준 프랑스 유권자의 태도를 거론했다. 그는 “둘 더하기 둘이 다섯이고, 직선으로 가는 것이 가장 먼 길이며, 전체가 부분보다도 작다는 것을 750만 명이 투표로 결정했다”고 비판했다. 분명한 진실을 두고 투표로 틀린 답을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지적한 것이다.

이를 현재 동북아시아의 상황에 투영해보면 어떤 변형된 답이 나올까.

일본 정치인들은 일본군 성노예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억지 주장을 하고 일제의 아시아 침략이 피해국을 위한 것이라고 뻔뻔하게 주장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와 극우파의 과거사 왜곡과 여론 조작이 지속돼 국수주의 기류가 정착된다면 일본 사회에서도 ‘2+2=4’라고 말하는 것이 ‘자유’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암울한 상황이 오는 것은 아닐까.

자유라는 개념을 적용하기조차 어려운 북한에선 또 어떨까. 둘 더하기 둘의 답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나 당 간부들이 정해주는 게 아닐까. 남북 공동협력으로 평화를 추구하자는 제안에 서해상 포격 도발과 핵무기 실험 협박이라는 ‘오답’을 내놓는 북한 정권으로부터 도대체 언제쯤에나 정답을 기대할 수 있을까.

국내 정치나 국제사회에서 벌어지는 일 가운데에는 다수결로 정하면 안 되는, 정답이 분명한 사안들이 있는 법이다. 진실을 왜곡하려는 빅브러더들의 목소리가 커질수록 국제질서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한반도 주변은 여론을 왜곡해 군비 증강의 근거로 삼고, 과거 역사마저도 투표로 재단하는 이웃으로 가득하다.

그런 가운데 러시아와 대결 불사에 나설 것 같던 ‘세계의 경찰’ 미국마저도 크림 반도의 러시아 편입이라는 새로운 현실을 인정하고 러시아와 대화로 해결한다는 방향으로 돌아서는 모습이다. 명확한 기준이나 법칙도 없으며 소프트파워가 하드파워에 밀리는 현 국제질서도 ‘2+2=5’로 흐르고 있다. 결국 믿을 건 내 나라의 국력뿐이려나.

김영식 국제부 차장 spear@donga.com
#우크라이나#푸틴#러시아#미국#크림 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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