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지순]노동정책은 외딴섬이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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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노동정책, 근로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경제 질서와 현실에 기반해야
영세상인 중소기업 고려한 최저임금-근로시간 단축 등 사려 깊은 노동정책 필요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늘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그동안 우리 사회를 아프게 했던 비정상적이고 불합리한 폐해를 해소하고 극복해야 할 막중한 임무를 맡은 새 정부의 임기가 곧바로 시작된다. 보통 선거가 끝나면 인수위원회를 조직하여 선거 국면에서 제시된 다소 무리한 공약을 현실에 맞게 구체적인 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번 대선은 이러한 준비과정 없이 곧바로 새 정부가 출범하여 노동법의 개정을 포함한 입법 활동 및 정책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이 던진 공약의 무게감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가 보수정권에 대한 탄핵을 계기로 이뤄진 것임을 고려하면 노동정책의 방향도 대체로 진보적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실제로 실근로시간의 단축, 비정규직의 축소, 대기업-중소기업 근로자의 소득격차 해소,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최저임금 대폭 인상, 특수고용형태 근로종사자 보호 확대, 하청기업 근로자에 대한 원청기업의 책임 확대 등 실로 다양한 진보적 이슈가 제기되었다.

이 중에는 대부분의 대선 후보가 공통적으로 제시한 공약도 있는데, 이러한 공약들은 각 정파 간 비교적 쉽게 합의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이른바 ‘칼퇴근법’,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축소 등이다. 따라서 위의 노동정책 중에서도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을 포함한 제도 개선, 비정규직 사용 규제에 대한 정책과제가 새 정부에서 최우선적으로 다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일자리 창출, 정규직화, 차별 없는 높은 소득의 보장 등 선거공약으로 제시된 다수의 노동정책이 노사 자율의 확대와 합리적 규제를 중시하는 노동시장의 현대화를 위한 구조개혁을 수반하지 않고 추진될 경우 포퓰리즘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과 영국, 프랑스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포퓰리즘은 세계화를 반대하고 기업 활동에 족쇄를 채우는 극단적 좌파정책과 외국인에 대한 적대화, 고립주의 외교를 지향하는 극단적 우파정책으로 발현되고 있다. 두 극단적 포퓰리즘은 모두 통합을 저해하고 사회의 분열과 고립을 조장한다.

노동정책의 방향이 불평등과 불공정 해소를 통한 근로자의 보호를 일차적 목적으로 하는 데 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다른 요소를 무시하고 무조건 근로자 보호만을 고려하여 입법화한다면 실제 의도한 보호는 실현되지 않고 그 반대로 부작용으로 인한 근로자의 희생이 더 커질 수 있음을 주의해야 한다.

노동법은 국민경제를 위하여 기업 활동의 촉진과 모순되지 않으면서 국민들에게 노동의 기회를 효과적으로 창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노동법은 경제적 현실을 무시하고 노동법만의 고유 법칙에 의하여 독자적으로 전개될 수 있는 질서규범이 아니다. 노동법과 노동제도는 산업구조, 경제활동과 조화되어야 하는 전체 국민경제 질서의 부분으로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입법자들은 노동규칙에 관한 법규범을 제정하거나 개정할 경우 그 규범의 적용이 가져오게 될 실제적인 효과와 결과를 가능한 한 정확히 예측해야 한다. 또한 노동법 개정을 통해 실현하려는 근로자의 보호규정들이 경제 질서의 원활한 유지와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노동정책은 포퓰리즘의 유령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고 양보와 타협을 통해 공정한 분배를 이뤄 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하는 데 역점을 두어야 한다. 현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을 전제로 노동의 생산성과 분배의 공정성, 유연성과 안정성(보호), 자유와 평등이 조화될 수 있는 노동정책이 필요하다. 근로시간의 단축은 중소기업이 처해 있는 현실과 조화하면서 이뤄져야 하고, 최저임금 인상은 지급 주체인 영세 상공인들의 지급 능력을 고려하면서 추진되어야 한다. 비정규직 고용 형태의 사용 규제는 정규직 고용 형태의 유연성 및 생산성을 높이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동규칙은 경제활동의 전제이지만 경제 현실과 동떨어진 노동규칙은 경제활동에 큰 피해를 주고 결국 근로자들의 일자리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경제 질서와 밀접한 관련성을 갖는 노동의 본질을 모르거나 아니면 무시한다면 모두 포퓰리즘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불합리한 정치 체제를 개혁하고 경쟁력 있는 경제 체제를 구축하여 21세기 대한민국의 도약을 책임지게 될 새 정부의 현명하고 사려 깊은 노동정책을 기대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대통령#노동정책#일자리 창출#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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