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지순]4차 산업혁명과 근로시간의 미래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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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업무환경에 하루 8시간 근로는 더이상 의미없어
최적의 업무시간은 근로자 스스로 결정
노동4.0시대에는 새로운 프레임 짜야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근로자와 기업들은 대통령 선거가 본격화하기 전에 근로시간 제도의 개선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정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장시간 근로에 대한 지속적인 문제 제기가 있었고, 연장 근로와 휴일 근로에 대한 근로기준법의 모호한 규정 때문에 노사 간 법적 분쟁이 다수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련 규정의 명확화는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또한 기간제법과 파견법 같은 민감한 법률들과 달리 근로시간 제도의 개선에 대해서는 정부와 노사, 여야 모두 어느 정도 공감대를 가지고 관련 논의를 차곡차곡 진행했기 때문에 여야 합의 가능성도 높게 점쳐졌다. 그러나 사실상 대선 전 마지막 국회라고 여겨지는 2월 국회가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여전히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책상 서랍 속에 잠자고 있다.

근로시간 제도의 쟁점은 실근로시간의 단축이다. 근로기준법상 법정 근로시간은 1주 40시간이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여기에 1주 12시간의 연장 근로시간이 허용되고, 다시 1주일 평균 1회 이상 부여되는 휴일 근로도 가산수당을 지급하면 허용되었다. 그 결과 우리 근로자들의 실제 근로시간은 1주일에 60시간을 훌쩍 넘기 일쑤다. 장시간 근로는 근로자들의 건강을 훼손하는 주된 원인이지만,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는 장벽이 될 수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이 불가피한 이유이다.

그렇지만 4차 산업혁명의 태풍은 단순히 근로시간 단축 문제를 넘어선 전혀 새로운 이슈를 낳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디지털 기술혁명은 인간 노동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디지털 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언제 어디서든 회사의 서버나 동료 근로자와 연결될 수 있게 되어 노동 시간과 작업 공간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 사용자는 단순히 근로시간 수가 아닌 노동의 결과(성과)를 보상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근로자들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시간과 장소를 자유롭게 결정하고 개인생활이나 가족을 위해서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할 태세가 되어 있다. 모든 근로자가 동일한 시간대에 늘 지정된 곳에서 감시받으며 노동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1주 40시간의 원칙만 지킨다면, 그리고 적어도 하루 중 최소한의 연속적 휴식시간만 지켜진다면 1주 5일 근무가 아니라 1주 4일 근무도 희망할 것이다. 근로자는 하루 중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는 시간대에 근로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유럽연합의 근로시간 입법지침이 보여주는 것처럼) 1일 8시간 근로는 더 이상 절대적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다.

다른 한편 업무와 사적 생활의 경계가 완화됨에 따라 근로자는 휴식시간에도 스마트폰을 통해 회사로부터, 상사로부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카카오톡으로 업무 지시를 받게 된다. 노동 강도가 강화되는 것이다. 따라서 하루에 최소한 연속적으로 9∼11시간 정도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는 실근로시간 단축이라는 1, 2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1.0의 과제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4.0에 부합하는 근로시간 제도의 새로운 프레임을 구축해야 하는 두 개의 전쟁을 수행해야 한다. 근로시간을 단축해서 근로자들에게 휴식을 부여하되,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산업에 월등히 많은 근로자가 종사하고 있는 산업현실을 고려하여 기업과 근로자들이 좀 더 유연하고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새로운 근로시간 규제 원칙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다. 찰리 채플린의 모던타임스 시대의 집체식 근로시간 규제를 아직도 유지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에 대한 근본적 혁신을 고민해야 한다.

정치권의 대선 공약은 4차 산업혁명을 외치면서 정작 4차 산업혁명의 미래를 담아낼 새로운 근로시간 개혁에 대한 구상은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유럽에서는 이미 20년 전부터 바뀌고 있는데 말이다. 노동법이 기술적, 경제적 환경의 변화에 눈높이를 맞추어 변화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갈등과 분쟁의 불씨가 될 뿐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근로시간#근로기준법#4차 산업혁명#대선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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