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류길재]문제는 트럼프가 아니라 우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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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에 충격 받은 진짜 이유… 최순실 사태 혼란과 불확실한 정국속 마주했기 때문
대통령의 결단과 여야 정치권 협력이 시급한 이유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 전 통일부 장관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 전 통일부 장관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은 한국 사회에 충격으로 다가왔다. 막말을 일삼으면서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인 부호 출신 정치인은 아무리 봐도 대통령감은 아니었다. 더욱이 미군 주둔 비용을 전액 물리겠다든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재협상하겠다든지 등 그가 던진 말들이 현실화된다면 한미관계는 격랑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김정은과 햄버거를 같이 먹겠다거나, 핵무장을 용인하겠다는 말도 가슴을 덜컥 내려앉게 했다.

 당선되자마자 트럼프가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하겠지만, 모든 나라를 공정하게 대하겠다고 한 말은 ‘립 서비스’일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캠페인 때 했던 말이 그대로 정책이 될 가능성도 높아 보이지 않는다. 미국인들의 선택이기 때문에 당연히 존중해야 하겠지만, 트럼프 현상은 우리의 경제와 외교안보에 불확실성을 노정하게 될 것이다.

 분명해 보이는 것은 그가 비즈니스맨이고, 경제 이슈로 당선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이유에서 당분간 경제정책에 전념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력한 보호무역주의를 지속적으로 표방해 왔기에 전 세계적으로 경제 한파가 몰아칠 가능성이 높다. 무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는 그렇잖아도 경제의 ‘펀더멘털’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트럼프 당선을 바라볼 때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점이다.

 그런데 트럼프 당선이 결정된 직후 정부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개최하고, 회의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는 장면을 보면서 걱정이 앞선다. 자칫 긴밀한 우방인 미국의 대선 결과를 한국의 외교안보에 위기를 조성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전할 수도 있다. 여당이 ‘트럼프 비상체제’라는 표현을 쓴 것도 외교적으로 오해의 소지가 있다.

 둘째로는 한미의 강력한 대북 제재 압박 기조가 흔들림 없이 지속되도록 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발언도 지금까지의 정책이라는 점에서 당연해 보이지만, 이 역시 성급했다. 트럼프 팀은 버락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려 할 것이고, 어떤 정책 분야를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 정하게 될 것이다. 역시 경제정책이 외교안보 정책보다 앞에 위치할 것이다. 지금은 우리 입장을 구체적으로 전하기보다 새로운 정부와 함께 간다는 원론적 기조를 인상 깊게 전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게 하려면 트럼프 진영이 중시할 경제 분야에서 어떤 협력을 할 것인지 제시하면서, 외교안보 분야에서 미국의 협력을 받아야 할 부분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

 트럼프를 ‘미국 민주주의의 암적 존재’라고 신랄하게 비판했던 CNN의 시사평론가 파리드 자카리아는 16년 전에 출간한 역저 ‘포스트 아메리칸 월드’에서 기능장애에 깊이 빠져 있는(highly dysfunctional) 미국 정치의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는 21세기에는 미국의 쇠퇴가 아닌 나머지 국가들의 부상(rise of the rest)이 주목된다고 했다. 군사적으로 미국의 힘은 지속되겠지만, 경제 등 그 이외의 분야에서 과거 미국이 누렸던 패권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런 국내외적 조건이 트럼프를 밀어 올렸을 것이다. 나아가 고립주의와 포퓰리즘의 흥기(興起)라는 점에서 영국의 브렉시트(Brexit)나 필리핀의 로드리고 두테르테 정권 등장과도 궤를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트럼프 현상은 일시적이거나 변칙적인 것이 아니라, 21세기 세계사의 유력한 경향으로 이해해야 할지도 모른다. 트럼프 등장에 따른 불확실성을 각오해야 하지만, 냉정하면서도 신중하게 대응해야 하는 이유다.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다. 아마도 한국 사회가 트럼프 당선에 충격을 받은 진짜 이유는 최순실 게이트로 온 국민이 자괴감과 수치심, 그리고 향후 정국에 대한 불확실성에 휩싸인 상태에서 마주했기 때문이 아닐까. 봉건시대에도 흔치 않을 사건이 근대 민주공화정에서, 그것도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에서 자행되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무슨 말로 이해시킬 것인지 난감하다.

 미국에서 어떤 정부가 들어서든 그 자체가 버거운 것이 아니다. 국정이 안정되고, 정책 수립을 위한 소통이 원활하고, 국민의 지지가 있다면 어떤 일도 능히 해 낼 수 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우리 아이들을 위한 대통령의 결단과 여야 정치권의 협력이 시급한 이유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 전 통일부 장관
#도널드 트럼프#한미 자유무역협정#fta#트럼프 당선#최순실 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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