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함인희]음주-면허-결혼… 내 나이가 어때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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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나이 채워 입학시키는 세태
정년-연금-지하철 승차 나이는 미묘한 정치적 파장 불러
아동-청소년 연령 구분에 혼선도
연령 기준과 시대 변화를 현실에 맞게 반영해야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3월, 새 학기가 시작되는 달이다. 어린이집 유치원에서부터 대학에 이르기까지 각급 학교는 졸업생을 떠나보내고 신입생을 맞이할 준비를 모두 마쳤을 것이다. 해마다 3월이면 한 학년씩 올라가면서 새로운 선생님과 반 친구들을 만나게 될 기대에 가슴 설레던 기억이 새롭다.

한데 초등학교(당시는 국민학교) 시절, 한 학년씩 올라갈 때마다 내 이름이 늘 꼴찌로 불린다는 사실은 어린 마음에 여간 불만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가나다순으로 해도 ㅎ 자(字) 성(姓)이니 뒤에서 가깝고, 생일로 해도 2월생(生)이니 거의 끝번호가 내 차지였다. 중학교에 가서야 작은 키 덕분에 앞 번호를 받게 되는 호사(?)를 누렸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가 되어서야 내 생일에 담긴 ‘웃픈’ 사연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당시 동사무소(지금의 주민센터)에는 2월 10일생으로 기록되어 있었고, 원래 호적(현재 가족관계등록부)엔 3월 10일로 등재되어 있었음이 밝혀졌던 것이다.

사연인즉 외할아버지께서 당신 외손녀 출생신고를 미루시다 동사무소를 찾아가셨는데, 출생신고 담당 서기가 “할아버지, 늦게 오셔서 벌금 내셔야 됩니다” 하더란다. 그러자 외할아버지께서 “그럼 벌금 내지 않아도 되는 날로 신고해주구려” 해서 국가가 공인(公認)하는 출생일과 실제 태어난 날 사이에 한 달가량의 시차가 발생했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취학 연령이 되자 엄마 입장에서는 ‘불과 열흘 상관’에 딸자식을 ‘1년이나 묵혀서’ 학교에 보내는 것이 못내 아쉬우셨단다. 해서 다시 동사무소 서기를 찾아가 호적엔 3월생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론 2월생이니 취학통지서를 발급받게 해달라고 애원했다는 것이다. 당시는 모든 기록이 전산화되기 이전이었기에 엄마의 기지와 동사무소 서기의 배려(?)로 나는 ‘제 나이에’ 당당히 1학년 입학식에 참석할 수 있었던 셈이다.

물론 고등학교 이후부터는 다시 호적 생일을 찾게 되었는데, 인생은 반전(反轉)의 연속이라 했던가, 그 열흘 상관에 65세가 정년인 대학에서 6개월을 더 근무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의 웃지 못할 사연을 듣던 선배 교수 왈, 당신네 고향에선 높았던 유아 사망률 탓에 보통 출생신고를 1, 2년 지난 후에 하는 것이 관행이었다고 한다. 그분도 주민등록 나이보다 실제론 한 살이 더 많고, 친구는 무려 3년이나 덕을 보기도 했다는 거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 같지만 베이비붐 세대의 경험담이다.

요즘 1, 2월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행여 우리 아들딸이 뒤처질까 보아’ 예년 같으면 미루지 않고 제 나이에 취학시켰으나 일부러 나이를 꽉 채워 입학시킨다 하니, 또 다른 의미의 격세지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고 보니 극히 개인적 영역에 속해 있다고 생각해왔던 나이도 실상은 국가의 관리 및 통제 대상이란 사실이 실감 난다. 실제로 운전면허 취득 연령, 음주 허용 연령,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연령, 심지어 부모 허락 없이 결혼할 수 있는 연령까지 모두 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던가.

그런가 하면 연령 자체가 미묘한 정치적 쟁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이미 논란이 되고 있는 건만 해도 선거권 부여 연령을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추자는 안에서부터, 정년 연장과 맞물리면서 논란이 된 연금 수혜 연령을 거쳐, 지하철 및 공공기관 이용 혜택 연령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슈들이 떠오른다.

연령에 부여된 사회적 의미가 매우 빠르게 바뀌고 있음도 이젠 진지한 고려 대상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고령화로 인한 연령 패러다임의 변화 못지않게 아동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법 규정 또한 사회 변화 흐름을 충실히 반영할 필요가 있으리란 생각이다. 차제에 아동과 청소년의 정확한 구분 내지 범위를 둘러싸고 혼선과 혼란을 빚고 있는 법 제도를 정비하고, 아동의 시민권 논의를 진전시키고 있는 유럽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아동과 청소년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를 허용하고 어떤 책임과 의무를 강화해야 할 것인지 현실에 부응하는 논의를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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