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류길재]신뢰프로세스 대체할 對北전략이 필요한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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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실험 후 안보불안 부추기는 北…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의문
대북정책 새 패러다임 마련해야 지혜를 모으는 공론場 만들고
멀어진 한중관계 관리도 필수… 분열된 국내 여론 통합도 과제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 전 통일부 장관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 전 통일부 장관
박근혜 정부는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직후 출범했다. 그런 엄중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남북관계에서 신뢰가 통용되는 관계를 구축해 보자는 목표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대북정책으로 추진하였다. 과거 반복됐던 도발→위기→보상→도발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처하되, 북한이 우리가 내미는 손을 잡으면 협력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도록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남북관계를 정상적인 관계로 바꿔 보자는 의도였다.

그러나 북한은 정부 출범 직후 개성공단 가동을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다. 통일부가 당시 업무보고에서 개성공단 국제화를 밝힌 직후여서 그만큼 충격이었다. 더구나 북은 우리 인원이 완전히 귀환하려면 미수금 1300만 달러를 지급하라고 요구하는 뻔뻔함까지 드러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공단 재정상화를 위한 협상에 나섰고, 같은 해 8월 14일 합의에 이르렀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대해서 북한과 무슨 신뢰를 쌓느냐, 신뢰라는 추상적인 것보다는 구체적인 전략이 필요하지 않으냐는 비판도 있었다. 그런데도 모험주의적인 성향의 김정은이 등장한 지 불과 1년여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남북관계의 구도를 새로 짤 수 있는 기회였고 남북이 통일 비전을 함께 내다보면서 그 기반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이를 추진했다.

그러나 지난 3년을 되돌아보면 이러한 생각이 과연 적실성이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 정권은 공포통치로 엘리트들을 잡아 나갔고, 장마당에 대한 통제를 풀면서 주민들의 생활을 안정화시켰다. 유엔 제재에도 불구하고 중국과의 경제교류가 이어지면서 오히려 경제성장률이 증가하기까지 했다. 2013년과 비교했을 때 북한 정권의 급변사태 가능성이 낮아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은 관계 개선에 나서기는커녕 오히려 안보 불안을 부추기면서 급기야 ‘수소탄 핵시험’을 감행했다. 이번 실험으로 북의 핵 능력이 고도화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앞으로도 지난 3년과 마찬가지의 길을 갈 것임을 확실하게 천명한 것이다.

개성공단 가동을 전면 중단한 것은 극약 처방임에 틀림없지만, 위와 같은 상황을 감안하면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우리는 북한의 도발적인 행동이 갖는 성격과 지향점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데 인색했다. 그러나 이제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달라진 한반도의 안보 상황을 반영하는 대북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마련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잔여 2년은 한반도의 명운이 바뀔 수 있는 중요한 시기이다.

첫째, 이를 위해 정부 및 민간 차원에서 집단적 지혜를 발동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당장 어떤 방책을 제시하기보다는 방책을 만들 논의의 틀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교안보 부처들로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야 한다. 동시에 민간 전문가들로도 TF를 구성해야 한다. 이들 기구에서 모든 방안을 놓고 논의하고 방책을 몇 가지로 정리해야 한다.

둘째,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로 틈이 벌어지고 있는 한중 관계를 관리해야 한다. 중국의 도움은 앞으로도 대북정책과 통일에 필요하다. 사드가 대북 안보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을 설득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셋째, 작금의 조치를 놓고 갈라져 있는 양분된 국민 여론을 통합시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내부의 분열은 안보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친다. 북한뿐 아니라 국제사회도 우리 사회 내부의 분열을 훤히 알고 있다. 더구나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국론 분열은 정치적 갈등으로 증폭된다.

공단에서 철수한 기업들에 최대한의 지원을 하는 일도 필요하다. 공단 폐쇄가 북한에 뼈아픈 상태가 되려면 기업들이 피해를 보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물론 현행 제도하에서는 정부가 기업의 피해를 충분하게 보상해 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보상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번 일로 그 기업들이 북한을 이롭게 했던 것처럼 간주돼서는 안 된다. 기업들은 남북 합의에 따라서 정해진 임금을 지급했을 뿐이다. 공단 수익금을 갖고 북한이 핵개발을 했다면 그 책임은 북한 당국에 있다.

류길재 북한대학원대 교수 전 통일부 장관
#개성공단#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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