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형주]은둔과 참여, 그 중간지대의 위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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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제 해결뒤 도피한 수학자 외 참여형 지성인 의외로 많아
독립지원과 인권투쟁에 나서 反문명 운동도 이끌기도
“자유를 잃었다”는 일부 신념, 반대 견해도 접해야 검증 가능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
역사에는 은둔자로 살았던 수학자도 있고 변혁가로 살아간 수학자도 있다. 때로는 은둔과 참여의 두 모습이 혼재되어 여운이 남는 경우도 있다.

은둔자 유형의 수학자로는 러시아의 그리고리 페렐만이 자주 거론된다. 푸앵카레 추론이라고 불리며 100년간 미해결로 남아있던 난제를 해결한 이 천재 수학자는 지적 성취에 오롯이 만족해서 수학자 최고의 영예로 불리는 필즈상 수상도 거부했고 미국 클레이 재단이 밀레니엄 7대 난제 중 하나를 해결한 공로로 지불하려던 100만 달러도 거절했다. 세인의 눈을 피해 노모와 함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그는 분명 은둔자 유형의 수학자로 불릴 만하다. 유럽사를 들여다봐도 수도사로 살며 지적 작업을 하던 과학자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지동설을 처음 주장한 코페르니쿠스는 가톨릭 신부였다.

참여형 수학자는 세상의 문제 해결에 뛰어든 변혁가들인데 의외로 상당히 많다. 프랑스 혁명기에 왕당파에 맞서 싸우던 천재 수학자 갈루아, 영국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이며 반전운동에도 적극적이었던 버트런드 러셀, 프랑스의 첫 번째 필즈상 수상자인 로랑 슈바르츠 같은 이들을 들 수 있다. 슈바르츠는 지난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던 세계적인 대수학자로, 함수의 개념을 일반화한 디스트리뷰션(distribution) 이론을 개척해 20세기 해석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50년 필즈상을 수상했다. 유년기에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등 언어적 재능을 드러냈고 음악적 소양도 뛰어났으며 식물과 동물에 대해서도 박식했다. 취미였던 나비 수집은 경지에 이르러서 그가 발견하여 이름을 붙인 나비 종도 여러 개 있고 방대한 수집물은 프랑스 자연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00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알제리와 베트남의 독립을 지원하며 인권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활동을 정력적으로 수행한 당대의 지성으로 존경을 받았다.

세 번째 유형은 흔하진 않지만 우리를 깊은 성찰에 빠뜨린다. 20세기 한때 미국에서 연방수사기관이 가장 요주의 인물로 찾던 ‘유너바머(Unabomber)’를 기억하는가. 결국 체포되어 아직도 수감 중인 그의 이름은 시어도어 카진스키다. 미시간대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버클리대에서 조교수를 지냈다.

문명과 동떨어져서 외진 산골에서 홀로 지냈던 그를 단순히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외톨이형 은둔자로 결론내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사회참여의 진전된 모습이 은둔으로 나타난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이다.

이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모습과 유관하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을 겪으면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번졌던 반전운동은 문명의 공과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져서 반(反)문명 운동의 양상을 띠게 됐고, 히피 운동의 형태로 구체화됐다. 당시 반전운동의 중심이었던 버클리는 자연스럽게 히피 운동의 성지가 되었다. 그 시기에 카진스키는 버클리대 수학과 조교수였는데, 문명이 만들어낸 파괴적 결과에 깊이 공감하고 상심했다. 종신교수 심사를 앞둔 조교수가 통상적으로 겪는 극단적 스트레스 탓일 거라고 추측하는 이들도 있다.

종신교수 심사를 포기하고 몬태나 주의 외진 통나무집에 은거한 그는 기술의 발전과 관련된 사람들에게 수제 폭탄을 거듭 보내서 3명이 사망하고 수십 명을 부상당하게 하는 테러리스트가 되고 말았다. 그는 ‘산업사회와 그 미래’라는 제목의 글을 뉴욕타임스에 익명으로 기고했다. 그의 주장이 담긴 글은 흔히 ‘유너바머 매니페스토’로 불린다. 기술의 발전은 거대 조직을 만들어내고 이는 인간 자유의 상실을 초래했다는 내용이다.

은둔형 참여자의 한계는, 자신의 신념을 검증할 기회를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사실(facts)과의 비교 기회도, 다른 뜻을 가진 이들과의 논쟁과 대립을 통해 자신의 논리를 교정하고 정교하게 만들 기회도 없다.

과학기술을 통한 인간 삶의 질 향상은 카진스키에게는 신기루로 보였던 걸까. 그가 공적 논쟁의 영역으로 들어갔더라면 아마도 이런 견해도 접했을 것이다. 그와 같은 삶의 향상이 가능하다고. 이는 인간이 고귀하고 가치 있는 일에 몰입할 수 있는 자유로움을 허용할 거라고. 그리고 그 증거도 꽤 쌓여 가고 있다고.

박형주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 아주대 석좌교수
#그리고리 페렐만#카진스키#반전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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