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지순]일반해고 가이드북이 실효성 가지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노동계 우려와 달리 쉬운 해고 정당화 조장하는 내용 없어
노동-경영계 목소리, 정부 최대한 존중하고 노동-경영계도 반대 위한 반대 자제를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해 12월 30일 고용노동부는 전문가를 초대해 의견을 듣는 방식으로 취업규칙 변경에 관한 운영지침안과 함께, 이른바 일반해고에 관한 가이드북 초안의 내용을 공개했다. 이 두 쟁점은 2015년을 뜨겁게 달궜던 노동개혁 이슈 가운데 가장 논란이 심했던 핵심 중 핵심 쟁점이다. 이 중 취업규칙 변경에 관한 운영지침은 사실상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에 한정된 것이고 그 내용도 대법원의 판결을 재차 확인하는 추상적 수준이어서 실제 논란은 그리 크지 않을 듯하다. 세간의 관심은 결국 일반해고에 관한 가이드북에 집중되고 있다.

일반해고란 근로자의 비위(非違)행위로 인한 징계해고나 기업 경영상의 이유에 따른 정리해고와 달리 근로자의 업무능력 부족이나 적격성 결여, 성적 부진 등을 이유로 하는 해고를 의미한다. 정부가 일반해고에 관한 지침 작성 계획을 처음 알린 2014년 말부터 노동계는 극도의 경계심을 표출했고 노사정 합의의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노동계가 반발했던 가장 큰 이유는 정부의 해고 관련 지침이 해고 사유를 넓혀 근로자의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나아가 정리해고 대신 일반해고를 유도함으로써 구조조정을 쉽게 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이번에 공개된 정부의 가이드북 초안에서도 노동계의 이러한 우려가 현실화되는 것은 아닌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가이드북은 왜 필요한가? 어떤 기업이든 절대적 또는 상대적으로 성과가 낮은 근로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채용 과정에서 업무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능력 부족 또는 저성과자로 낙인찍힌 근로자가 사실상 기업의 퇴출 프로그램 대상이 되거나 불분명한 이유로 해고되는 등 불합리한 처우를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따라서 일반해고 사유의 기준과 해고 회피를 위한 사용자의 조치 내용을 명확히 하면 기업도 부당해고로 인한 불필요한 비용을 줄이고, 근로자도 적절한 재기의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고용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이드북이 쉬운 해고를 조장할 것이라는 노동계의 우려는 사실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사용자의 해고가 정당한지 부당한지는 결국 법원이 최종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가이드북은 법률이 아니며 법률에 반할 수 없다. 행정부가 만든 가이드북으로 근로기준법의 적용이 좌우되는 것은 아니며, 그 때문에 법원의 해석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행정부의 ‘지침’이 법률이나 판례에 어긋나 예상치 못한 큰 혼란과 손실이 발생할 수 있음은 지난 통상임금 사건에서 충분히 경험한 바 있다.

다행히도 가이드북 초안은 쉬운 해고를 조장하거나 정당화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인사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높이고, 교육훈련 또는 배치전환을 제도화하여 해고를 회피하도록 사용자의 의무를 명확히 한 측면이 있다. 이 때문에 기업들과 일부 언론은 “해고가 어렵게 됐다”며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라는 노동개혁의 목표가 실종되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일반해고에 관한 가이드북의 내용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데 대체로 의견을 같이했다. 다만, 어디까지나 근로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근로기준법의 정신과 원칙을 토대로 작성되는 가이드북이니만큼 사례 제시나 표현에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고용부는 초안의 마지막 한 획까지도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사용자 보호를 위한 지침이라는 소리를 들어서는 안 된다.

9·15 노사정 합의문은 고용 안정성을 높이고 신규 일자리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인사 원칙의 정립과 근로계약 전반에 관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을 확인한 바 있다. 또한 근로계약의 체결 및 해지의 기준과 절차를 법률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하되, 정부가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쳐 시행하도록 했다. 정부는 노동계와 경영계가 우려하는 바를 경청하고 협의하는 데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노동계와 경영계도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문제점과 근거를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노동개혁 입법이 국회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상황에서 가이드북마저 마련하지 못하면 개혁의 동력이 상실될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노동개혁은 노사정 합의에 기초한 국민에 대한 약속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