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천영우]북한의 법적 지위와 일본의 자위권 행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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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북한에 대한 주권, 美-日등 국제사회선 인정안해
남북기본합의서는 ‘특수관계’ 규정… 北 자치능력 상실땐 자치권 회수
대한민국이 직할통치하도록 했다
이해당사국들과의 통일외교, ‘하나의 한국 정책’ 이해시켜야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얼어붙었던 한일 관계가 오랜만에 해빙의 기회를 맞고 있는 시점에 일본의 안보법제 개정에 따른 자위대의 북한 진입 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달 20일 한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한민구 국방장관이 “북한은 헌법상 우리 영토이므로 자위대의 북한 진입에는 우리 정부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데 대해 나카타니 겐(中谷元) 일본 방위상은 한국의 실효적(實效的) 지배가 미치는 범위는 휴전선 이남이라고 대응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법적 지위는 정의하는 주체와 관점에 따라 다를 수 있는 복잡한 문제다. 국내법과 국제법 사이에 괴리가 있고 남북 상호 간에만 적용되는 법리가 다르다. 주권과 실효적 관할권도 다른 개념이다. 일본의 입장을 바꿀 정교한 법적 논리나 전략도 없이 섣불리 제기했다가는 자칫 일본 측에 기존 입장을 공식으로 확인할 기회만 줄 뿐 혹 떼려다 혹을 붙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일본은 북한을 국가로 승인한 적이 없지만 대한민국의 주권이 북한에까지 미친다고 인정한 적도 없다. 이런 입장은 1965년 한일 기본조약 체결 과정에서 이미 확인된 것이다. 국교정상화 협상에서 한국은 대일(對日) 청구권에 북한 몫이 포함돼 있다고 주장했으나 일본은 끝까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주권만 인정했더라면 앞으로 북한 몫으로 지불할 막대한 배상금을 면제받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권을 인정하는 대신 통일 이후에도 갚아야 할 채무를 떠안기로 한 것이다.

자위대가 북한에 진입할 상황이란 북한이 일본이나 미국을 공격해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을 경우에만 설정 가능한 시나리오다. 헌법상 대한민국이 북한에 대한 주권을 갖고 있지만 북한의 이 같은 침략 행위를 막을 수 있을 만큼 실효적 통치권을 행사할 수 없다.

더구나 북한에 대한 제3국의 개별적 자위권 행사는 우리 정부가 실제 상황에서 전혀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즉 북한이 일본을 직접 공격하면 미일 안보조약에 따라 미국은 바로 북한과 전쟁 상태에 들어가고, 미국을 공격하면 남북 간에도 전쟁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이 직접 공격을 받지 않은 경우라면 자위대가 북한에 진입할 리가 만무하다. 한미 연합군이 진주한 안전 지역에서 일본은 후방 지원, 식량 수송을 도와주는 것 이상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직 북한을 승인하지 않은 국가들이 북한에 대한 우리의 주권을 인정한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 동맹국인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1948년 12월 12일 제3차 유엔총회가 채택한 결의 195(III)도 대한민국을 유엔 감시하에 선거가 실시된 지역에 대해 실효적 통제와 관할권을 가진 유일한 합법정부로만 인정했지 북한에 대한 한국 정부의 관할권은 인정하지 않았다. 6·25전쟁 당시 유엔군이 38선을 돌파하여 북한에 진주한 뒤 이뤄진 1950년 10월 30일 이승만 대통령의 평양 방문도 관할권자인 유엔군 사령관의 허가를 받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이후에는 한반도에 두 개의 주권국가가 존재한다는 인식이 국제적으로 더욱 고착되고 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당사자인 북한이 북한 지역에 대한 우리의 잠재적 주권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1992년 2월 19일 발효된 남북 기본합의서 전문은 남북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했다. 남북 관계가 국가 관계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슨 관계란 말인가? 국제사회가 어떻게 보든 남북이 서로에게는 무허가 지방자치정부이고 통일이 이루어질 때까지는 한시적으로 이를 용인하자는 것이다. 이는 북한이 자치능력을 상실하면 중앙정부인 대한민국이 자치권을 회수해 직할 통치할 법적 근거를 제공한다. 물론 남한이 무정부 상태에 빠지면 북한도 같은 논리를 사용할 것이다. 이렇듯 기본합의서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 가입하면서 발생한 국제법과 국내법 간의 괴리를 해소하고 법적 혼란을 정리해준 가장 권위 있는 합의 문서이고 통일 과정에서 우리의 선택의 폭을 넓혀줄 비장의 카드다.

지금은 ‘하나의 한국 정책(One Korea Policy)’을 다시 확립할 때다. 통일외교도 핵심 이해당사국들로 하여금 남북 기본합의서의 원칙과 정신을 존중하도록 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대통령도 “북한이라는 나라”라고 헌법과 남북 기본합의서에 배치되는 표현을 무심코 사용하는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북한#통일외교#하나의 한국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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