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주경철]우물이 말라봐야 물의 가치를 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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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인류 주요 문제가 된 물… 11억명은 식수조차 못구해
‘대한민국=물 낙원’도 옛말… 장기적-종합적인 대책 필요
정쟁 휩싸인 4대강 사업도 수자원 관리라는 측면에서 냉철하게 다시 살펴보자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유례없는 가뭄으로 온 산하가 바짝 메말라 있다. 충청도 지방에서는 저수지 바닥이 드러났고, 당장 식수가 부족하여 제한급수 조치가 취해진 상태다. 우리나라도 바야흐로 물 부족 국가가 되고 있다.

20세기의 주요 문제가 석유였다면 21세기의 문제는 물이 되리라고 많은 전문가가 주장한다. 20세기에 인류의 물 사용량은 9배 증가했다고 한다. 물 사용량의 증가 속도는 인구 증가보다 두 배 이상 빠른데, 앞으로 세계 인구가 70억 명에서 100억 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추산하니, 물 문제가 갈수록 심각해질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다.

현재 세계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11억 명의 사람은 안전하게 먹을 수 있는 최소한의 식수도 구하지 못하는 상태다. 세계 인구의 5분의 2가량인 26억 명은 일상적인 위생과 보건에 필요한 하루 20L의 물을 공급받지 못한다. 그 결과 각종 수인성 질병들이 만연하고, 이것이 평균수명 단축으로 이어진다.

반면 산업화된 선진국들은 개도국에 비해 열 배에서 서른 배 정도 많은 물을 사용한다. 화장실 용수와 잔디에 뿌리는 물까지 포함하여 미국은 1인당 하루 평균 570L의 물을 써왔다. 그러나 이제 그런 사치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심각한 물 부족 문제에 직면한 캘리포니아에서는 북부지역 농부들이 휴한지의 계절별 물 사용권을 다른 농부들에게 판매하는 ‘물 은행’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앞으로 세계는 물 자원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나뉠 것이다. 중동지역처럼 전반적으로 물이 부족한 곳에서는 국가 간 물 전쟁이 일어나고, 사회 내부적으로도 물을 많이 쓰는 부유층과 그러지 못하는 계층 간의 계급투쟁이 심화될 것이다. 중국과 인도 역시 심각한 물 문제를 안고 있는데, 특히 인도는 조만간 물 부족 사태로 인해 사회가 폭발할 위험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지역들에 비해 우리나라는 아주 운 좋은 나라였다. 물이 비교적 풍부한 데다 화강암 지대의 특성 때문에 곧바로 마셔도 좋을 정도로 맑은 물이 나기 때문이다. 물 부족 국가들에는 한국이 ‘파라다이스’로 비칠 것이다. 원래 이 말은 물이 많고 녹음이 우거진 정원을 뜻했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나라도 더이상 물의 낙원이 아니라는 사실이 올 가뭄으로 여실하게 드러났다. 인구 증가와 산업화, 생활수준 상승으로 물 수요량이 엄청나게 늘었기 때문이다. 현재 방식으로는 크게 늘어나는 물 수요를 충당하지 못할 것이다. 자연에서 무제한으로 물을 뽑은 다음 대규모 중앙관리 방식으로 관리하고 공급하는 방식은 이제 한계에 이르렀다. 물을 잘 관리하며 사용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개발해야 할 때다.

‘4대강 사업’도 이런 관점에서 냉철하게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자원을 관리하는 인프라에 투자하는 아이디어 자체는 매우 좋은 방향이었다고 본다. 만일 그와 같은 시설이 없었다면 올해 광범위한 지역에서 식수 부족, 공업용수 부족, 수력발전 중단 같은 엄청난 문제들에 시달렸을 것이다.

다만 그처럼 중요한 사업을 한번에 몰아치기로 할 일은 아니었다. 한 지역에서 먼저 사업을 시행한 후 그 결과를 토대로 다음 지역에서 진행하는 식이었으면 훨씬 좋은 결과를 얻지 않았을까? 돌격대 식으로 여러 사업을 동시에 강행했으니, 마치 우리 몸에 한꺼번에 4번의 수술을 한 셈이다.

이제는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물 관리 대책을 준비할 때다. 무엇보다 전국의 물 수요와 공급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이에 맞는 수자원 이용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만 과연 이게 가능할까 심히 걱정된다. 4대강 사업 과정에서 보았듯이, 물 문제는 과도하게 정치화돼 있어 현실적인 문제 해결 방안을 논의하기보다는 상대편을 공격하는 소재로 사용되는 경향이 강했다.

우물이 마르면 물의 가치를 알아보는 법이다(벤저민 프랭클린).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는 물 문제에 대해서는 하루바삐 합의를 이루어내야 한다. 수자원을 생산적으로 이용한 나라가 선진국인 반면 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나라는 쇠락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역사의 명백한 교훈이다.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가뭄#물 은행#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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