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조원동]조선해양산업의 큰 그림이 필요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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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주력산업 조선 빅3마저 수조원대 적자로 위기 봉착
오랜 불황이 1차 원인이지만 저가수주 과당경쟁이 禍 키워
대우조선 구조조정을 조선 3社 간 전략적 제휴의 첫걸음으로 활용하자

조원동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중앙대 석좌교수
조원동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중앙대 석좌교수
조선해양산업이 위기다. SPP조선, 성동조선해양에 이어 2년 전 STX조선을 산업은행 주도의 워크아웃으로 보내면서 한숨 돌린 것처럼 보이던 조선업이 이제는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빅3까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1주일 전 한 경제지의 톱뉴스 중 하나는 국책은행들이 조선에 물린 자금이 총 64조 원에 이른다는 내용이었다. 조선은 반도체에 이어 우리 수출의 대들보적 산업이다. 특히 빅3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40%를 넘어 왔다. 이러한 산업이 어려움에 봉착했다고 하니 여간 걱정거리가 아니다.

그러나 위기는 또 기회이기도 하다. 역설적이지만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우리 제조업 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주었던 것처럼 지금 조선업의 어려움이 그간의 약점을 치유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더욱이 이번 조선업의 어려움은 과거 IMF 사태 때와는 달리 경쟁력이 떨어진 탓은 아니다. 우리 조선 3사는 여전히 세계적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 어려움은 기본적으로 2008년부터 이어진 세계 조선업의 오랜 불황에서 비롯됐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우리 빅3에 숨쉴 터전을 제공해왔던 것이 세계 해양플랜트 시장이었지만 이마저도 셰일가스·오일에 영향을 받고 있다. 작년 상반기만 해도 배럴당 100달러를 넘던 국제유가가 셰일오일 때문에 반 토막이 나자 해양플랜트 시장마저 얼어붙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의 잘못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세계 최고의 선박건조 기술을 믿고 해양플랜트에 진출했지만 바닷속은 육지와는 달랐다. 국내에 해저 광구가 없다 보니 안타깝게도 우리 조선 3사는 광구 개발의 경험을 쌓을 기회가 없었다. 해양플랜트 기본 설계의 기본 데이터가 없는 상황에서 우리 조선 3사는 해외 엔지니어링사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기자재 선정 권한이 해외 엔지니어링사에 있다 보니 기자재 국산화율은 20% 수준에 머물렀다. 그나마도 의욕이 앞섰다. 적어도 플랜트 건조 능력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조선 3사 간 지나친 경쟁으로 제값 받기에 실패했다. 저가 수주에 낮은 국산화율, 그리고 제작 과정의 시행착오가 조선 3사에 각각 조 단위 거액의 손실을 안겨주었다.

분명히 죄는 밉다. 더욱이 경영진의 자리 지키기 과정에서 손실을 제때 반영도 하지 않았다니 그 책임은 반드시 물어야 한다. 그러나 이 손실은 어떻게 보면 새로운 분야 진출에 따르는 학습비용이다. 지금 그만두면 돈만 잔뜩 쓰고 앞으로의 혜택을 포기하는 것이다. 중국이 바짝 따라오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 경제를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지금 상태로 계속 가서는 손실을 키울 뿐이다. 만약 조선 3사 간 인수합병 또는 적어도 지분 교환을 통한 전략적 제휴관계가 이루어진다면 당장 해외수주 과당경쟁을 방지할 수 있다. 어차피 해외시장을 겨냥하므로 국내 독과점 문제는 고려할 필요가 없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처럼 플랫폼 공유를 통한 원가 절감도 기대할 수 있다. 조선 3사 간 전략적 제휴는 해저설계능력 배양에 필요한 해외 엔지니어링사 인수에도 유리하다. 현재의 조선 3사 체제로는 인수 가격을 높일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IMF 때처럼 정부가 나서는 빅딜을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업계에서 자연스럽게 딜이 일어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해주자는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이미 채권금융기관들로 하여금 1조 원 규모의 구조조정 기금을 조성해 업종별로 기업구조조정 회사를 운영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산업은행과 금융위가 대주주인 대우조선은 이번 실사가 끝나면 어떤 형식으로라도 구조조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대우조선의 구조조정을 조선 3사 간 전략적 제휴의 첫걸음으로 활용해보자는 것이다. 금융위 발표가 현실화된다면 대우조선 기업구조조정 회사가 설치될 것이다. 이 회사의 목적은 대우조선에 대한 증자를 전제로 한 대우조선의 과감한 사업 구조조정 추진일 것이다. 이 회사에는 산업은행 등 대우조선 채권금융기관들이 채무의 출자 전환을 통해 주주로 참여해야겠지만 새 주주도 필요하다. 이 새 주주를 찾는 과정에서 현대중공업 또는 삼성중공업도 주식교환 형식으로 참여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채권금융기관의 출자 전환을 성사시키는 것도 어렵고 그 이전에 기존 주식의 감자도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사업 구조조정이 구체화되면 노사 문제도 불거질 것이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미 항공·석유 분야에서 삼성과 한화 간 자발적 빅딜이 있었다. 우리 조선업의 미래가 걸려 있는 일이기에 더더욱 결단이 필요하다.

조원동 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 중앙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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