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인평]몰매 맞을 각오로 쓰는 음악대학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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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대 졸업학점 140학점중 한국음악은 국악개론뿐
그것도 필수 아닌 선택

베토벤 슈베르트 좔좔 꿰면서 국악에는 깜깜한 학생들

서양음악 교육 90년만에 한국음대, 독일 음대 분교로
한국시장, 서양음악의 ‘봉’ 전락

전인평 중앙대 예술대 명예교수
전인평 중앙대 예술대 명예교수
음악대학 친구의 미국 유학 경험담이 생각난다. 첫 세미나 시간이었다고 한다.

“자네는 한국에서 왔으니 한국음악을 소개해 주게.”

“저는 사실 한국음악을 모릅니다.”

“아니 한국 학생이 한국음악을 모르다니….”

지도교수는 딱한 듯이 혀를 찼다. 친구는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 못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음악을 배울 기회를 제공하지 않은 음악대학이 야속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쇼크를 받은 학생이 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음대 교수로 취직을 하였다. 오늘날 음악대학에서는 어떻게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가? 각 음대 교과 과정을 살펴보자. 결과는 너무나 놀라운데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서양음악사는 필수로 가르치면서 한국음악사는 아예 교과목에 없다. 유럽 가곡을 잘 부르기 위하여 독일가곡 프랑스가곡 이탈리아가곡은 열심히 가르치면서 한국가곡 시간은 없다. 작곡과 학생들은 화성법 대위법 서양악기론 등 서양음악 과목은 필수로 지정하면서 한국악기론은 가르치지 않는다.

음악대학에서 가르치는 교과목을 좀 더 살펴보자. 서양음악 이론, 서양음악 분석, 독일어 발음법, 프랑스어 발음법, 이탈리아어 발음법, 오페라 클래스, 오페라사. 정말 철저하게 서양음악을 교육한다. 형편이 이러하고 보니 한국의 음악대학은 ‘독일 음악대학 한국 분교’라고 불러야 할 정도이다.

음대 교과 과정에 한국음악 강의로 국악개론이라는 과목이 간혹 보이기는 하지만 이 과목은 필수가 아니다. 그러니 졸업학점 140점 중에서 잘해야 2학점을 공부하는 형편이다. 즉, 우리나라 음악대학은 서양음악을 98.5% 배우고, 국악은 하나도 안 배우거나 배운 사람이라고 해도 겨우 1.5%를 배우고 있다.

이렇게 음악대학에서 자기네 음악을 교육하지 않고 서양음악을 주로 교육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외에는 없다. 중국 음악 교육제도를 보면 서양음악 전공자나 중국음악 전공자나 모두 서양음악과 중국음악을 함께 배운다.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 터키에서도 자기네 음악과 서양음악을 함께 배운다.

이처럼 우리나라 음대는 유럽음악 보급에 혼신의 힘을 다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음대 학생들은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 음악은 좔좔 꿰고 있으면서 한국음악은 모른다. 그래서 결과는 어찌 되었는가? 한국은 유럽 클래식의 좋은 시장이 되고 말았다. 외국 유명 연주자의 연주회 입장료는 수십만 원 하지만 국내 연주자의 경우 입장료가 2만 원이라도 손님이 들지 않는다. 이런 현상은 점점 더 심화되고 있어 우리나라는 유럽음악의 식민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도 희망의 불빛은 있다. 이렇게 음대 재학 중에 한국음악을 배우지 않았지만 한국 정서를 표현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음악인이 있다.

또한 베토벤 브람스 피아노곡에 만족하지 않고 한국 작곡가의 피아노곡을 진흥시키려 애쓰는 사람이 있다. 바로 중앙대의 피아니스트 이혜경이다. 그는 금년 1년 동안 작곡가 100명에게 작품을 위촉하고 피아니스트 100명을 동원하여 2015 K-클래식 전국 순회 연주회를 진행하는 엄청난 일을 벌이고 있다.

인천시립합창단의 윤학원 지휘자는 전속 작곡가를 두고 새로운 합창곡 발굴에 매진하고 있다. 많은 곡이 우리 정서를 내포하고 있고 수준 또한 높아서 한국 합창 음악의 세계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한 전남대 남의천 교수가 있다. 그는 유럽음악 전공으로 교수가 된 사람이다. 그는 유럽음악에 만족하지 않고 ‘우리가곡연구회’를 결성해 한국 가곡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평생 연구해 왔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매월 나에게 저작권 징수 명세를 보내오는데 유럽에서도 저작권료를 보내오고 있었다. 웬일인가 싶어 알아보니 남 교수가 내 노래를 독일에서 순회 연주한 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대학에서 서양음악 교육을 시작한 지 90년이 지났다. 이제 우리나라 음악대학은 ‘독일 음악대학 한국 분교’에서 ‘한국의 음악대학’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감하게 교육 내용을 개편하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전인평 중앙대 예술대 명예교수
#몰매#음악대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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