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천영우]한미 정상회담에서 무엇을 논의할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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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미사일 행보 거침없는데 워싱턴 조야엔 비관론 솔솔
朴대통령 6월 중순 訪美… 비핵화 동력 살릴 마지막 기회
구체적 전략과 액션플랜 제시… 오바마, 핵해결 앞장서게 해야
비상시 PGM전진배치도 요구를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박근혜 대통령의 6월 미국 방문은 우리의 핵심 외교안보 현안에 대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의미 있는 협의를 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가장 적실성 있는 의제를 선정해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미 정상회담의 단골 메뉴이지만 현 상황에서 북한 문제만큼 엄중하고 오바마 행정부의 집중력이 요구되는 의제는 없다. 김정은이 핵·미사일 개발에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는데도 워싱턴 조야에는 북한 피로증과 무력감이 만연해 있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6월 말 이란과 핵 협상을 마무리하더라도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설 것 같지 않다. 북한이 다시 위성으로 가장한 장거리 미사일 발사시험이나 4차 핵실험을 하더라도 강력한 규탄 성명과 상징적 추가 제재로 처벌하는 흉내만 내고 곧 다른 현안으로 옮겨가는 패턴이 반복될 공산이 크다.

이제 비핵화는 불가능하니 북한이 이미 개발한 핵무기는 용인하고 차라리 추가적인 핵 능력 증강과 확산을 포기토록 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라는 주장도 벌써부터 고개를 들고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무방비로 노출된 국내에서도 가망 없는 비핵화에 무작정 매달리지 말고 북한의 핵 무장 여력을 더 키워주더라도 5·24조치를 해제해 남북관계에 돌파구를 열자는 주장이 공공연히 나온다. 이는 바로 북한의 핵-경제 병진정책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대통령의 방미는 워싱턴의 이런 비관적 분위기를 바로잡고 꺼져가는 북한 비핵화의 동력을 되살릴 최후의 기회다. 구체적 비핵화 전략과 액션플랜을 제시해 오바마 행정부가 남은 임기 동안 북핵 문제 해결에 전력을 기울이도록 확실히 다잡아야 한다.

북한의 이해관계 구조와 전략적 계산 공식을 바꿀 수준의 고강도 제재 없이는 비핵화의 동력을 살릴 방법이 없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체제의 생존을 걱정해야 할 수준의 새로운 제재에 미국이 앞장서도록 오바마 대통령을 설득하고 의회 지도자들에게도 북한제재특별법 제정을 독려해야 한다.

아무리 강도 높은 제재로 북한을 압박하더라도 제재만으로 북한이 순순히 핵을 내놓을 리 없지만 외교적 해결의 기회를 살리는 데는 효과가 있다. 북한이 버틸 수 없는 수준의 제재와 함께 비핵화의 대가로 얻게 될 정치 경제적 혜택의 규모를 대폭 키우고 구체화해야 6자 회담이 재개되더라도 진전을 기대할 수 있다.

비핵화 다음으로 중요한 의제는, 대북 억지가 실패할 경우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킬 전략이다. 미국의 핵우산을 주축으로 한 확장 억지전략이 북한의 핵 사용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는 미신을 버리고, 북한이 핵무기로 공격하기 전에 이를 무용지물로 만들 미국의 정밀유도무기(PGM)의 획기적 증강과 전진 배치를 요구해야 한다.

한 시간 거리에 배치된 전술핵무기보다 북한 핵 미사일 기지를 10분 내에 타격할 PGM이 대한민국을 지키는 데는 더 유용하다. PGM으로 김정은의 지하지휘소를 포함한 북한의 핵심 군사목표물을 순식간에 다 파괴할 수 있다면 북한 지도부로서도 멀리 있는 미국의 핵무기를 가까이 있는 PGM보다 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언제 완성될지도 모르는 킬 체인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에 5000만 국민의 안위를 맡기기에는 상황이 너무 엄중하다. 대북 억지가 실패할 현실적 가능성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을 거부할 군사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는 억지(抑止)가 실패할 상황을 가정한 큰 틀의 안보전략 차원에서 다루는 미사일방어 체제의 구성과 선택의 문제다. 따라서 정상회담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북한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강구하기로 했다는 큰 틀의 합의로 충분하다. 최적의 미사일방어 시스템을 설계하고 배치하는 문제는 양국 국방당국 간에 군사적 효용성과 가용자원을 토대로 결정하면 될 일이다.

북한이 핵 포기를 계속 거부할 경우 김정은 체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양국 정상 간에 허심탄회한 논의가 필요하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같은 원대하지만 초현실적 구상을 설명하는 데 시간을 허비할 필요가 없다. 미국의 실용주의자들은 이런 심오하고 차원 높은 담론을 알아들을 능력도 없고 듣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한미 정상회담#박근혜#오바마#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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