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진석]창의력이 저절로 발휘되게 하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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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A 씨는 캐나다에서 대학을 다니는 아들을 만나러 갔다가 아들 방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답안지들을 발견하였다. 답답한 마음으로 그 답안지들을 대충 훑어보았는데, 자기가 보기에 그렇게 못 쓴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그 전공 분야의 학식을 갖추지 못해서 확신은 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양적으로는 충분하게 기술된 것으로 보인 것이다. 애석하게도 점수는 매우 낮았다. 그런데 낮은 점수 표기 옆에는 모두 붉은 글씨로 담당 교수의 지적사항이 적혀 있었다. “당신의 의견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교수는 그 학생 답안에 학생 본인의 의견이나 생각이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점수를 낮게 줄 수밖에 없었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들에게 말했다. “여러 장의 답안지에 모두 같은 지적사항이 있는데, 왜 그것을 고치지 못했느냐?” 아들이 답했다. “내 생각을 쓰라고 한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내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난 내 생각을 못하겠어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지만 A 씨는 이내 자신의 아들이 매우 솔직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수 있었다.

‘공부의 배신’을 쓴 윌리엄 데레저위츠는 어떤 주립대 분교의 교수가 자신의 학생들이 스스로 생각할 줄 모르는 것을 불만스러워하자 자신이 가르치는 예일대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법을 알지만, 그것도 교수가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뿐이라고 말해준다. 똑똑한 학생들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조차도 학습해버리는 것이다. 스스로 해낸 자신만의 생각조차도 자신의 생명에서 분출시키기보다 외부의 요구에 맞추는 훈련의 결과가 되어버릴 수 있다.

외부의 요구나 간섭 없이 오로지 자신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스스로의 생각일 수 있다. 이것만이 창의적 결과를 보장한다. 자신의 생각도 사실은 자신이 의도적으로 해내는 것이라기보다는 자신에게서 튀어나오는 것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A 씨의 아들도 의도를 가지고 맘만 먹으면 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하려 해도 잘 해지지 않는 것이 자신만의 생각이다.

자신이 발동시킬 수 있는 것으로 대표적인 것이 바로 질문이다. 대답이 아니다. 대답은 있는 이론이나 지식을 먹은 후 누가 요구할 때 그대로 뱉어 내는 일이다. 이때 승부는 누가 더 많이 뱉어 내는가 혹은 누가 더 원형 그대로 뱉어 내는가가 결정한다. 대답하는 사람은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지식과 이론이 머물다 가는 중간역이나 통로로 존재한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궁금증과 호기심이 안에서 요동치다가 계속 머무르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일이다. 궁금증과 호기심은 이 세상 누구와도 공유되지 않는 오직 자신만의 매우 사적이고 비밀스러우며 고유한 어떤 힘이다. 결국 궁금증과 호기심이 자기 자신이다.

창의력이 화두다. 하지만 창의력도 자세히 보면 발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발휘되는 것 혹은 튀어나오는 것이다. 창의력이 의도적으로 발휘하려고 해서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내일부터라도 맘먹고 발휘해버리면 될 일이다. 우리는 창의적인 국가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쉽지 않다. 창의력도 사실은 발휘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발휘되는 것 혹은 튀어나오는 것이다. 어디에서 튀어나오는가?

질문이 튀어나오고 창의력이 발출되고 하는 그곳은 지식이나 이론 혹은 기능이 작동되는 곳이라기보다는 궁금증과 호기심과 같이 무질서하고 원초적인 어떤 곳이다. 이론적이라기보다는 인격적인 어떤 처소이다. 정해진 처소도 없는 오리무중의 어떤 힘일 뿐이다. 터전 같은 것이다.

남귤북지(南橘北枳)라는 말이 있다. 남쪽의 귤을 강 건너 북쪽에 심으면 탱자가 되어버린다는 뜻인데, 주로 사람에게 삶의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나타내려 할 때 사용하는 말이다. 심겨진 터전에 따라 탱자도 되고 귤도 된다. 지식도 어떤 사람에게는 족쇄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자유와 창의의 바탕이 된다. 이 터전이 문화이다. 사람에게는 그것이 인격이다. 독립적 인격의 터전은 결국 궁금증과 호기심이다. 창의력이 필요하면 인격적 독립성과 자유로운 기풍을 제공하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문화가 강조되는 이유이다. 결국은 어떻게 궁금증과 호기심을 유지하는가이다.

최진석 서강대 철학과 교수
#창의력#공부의 배신#남귤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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