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전인평]한국과 일본의 음악 DNA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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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인평 중앙대 명예교수
전인평 중앙대 명예교수
연일 일본에서 들려오는 아베 신조 총리의 행보와 발언은 한국 사람들의 복장을 터지게 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은 바로 이웃에 있어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가야 할 숙명적 관계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웃이면서도 매우 다르다. 이러한 다름이 음악에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일본인은 놀랍도록 이성적이어서 어려움도 묵묵히 잘 참는다. 일본 고베 지진 당시 6300여 명이 사망하는 참변 앞에서도 질서를 잘 지키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비하여 한국인은 매우 감성적이다. 세월호 사건에서 보듯이 모든 일을 대통령 책임이라고 몰아붙이고, 모든 일을 대통령이 해결하라고 떼를 쓴다. 이처럼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성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다.

중국 사서인 북사(北史)에 보면 한국인은 “음악과 춤으로 고인을 보낸다”라고 묘사하였다. 또한 삼국지 위지(三國志 魏志)에도 제천의식에서 “밤새워 먹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춘다”라고 나온다. 이로 보면 한국인이 노래와 춤을 무척 즐기는 매우 낙천적이고 감성적인 민족이었음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서울대 음대 재학 시절 장사훈 교수에게 거문고를 배울 때였다. 선생님이 잠시 서류를 뒤적이는 동안, 나는 나도 모르게 선생님께 배운 가락을 연주하다가 다른 가락을 즉흥으로 연주하고 있었다. 이를 듣고는 선생님께서 “지금 가락 재미있네. 이 가락을 악보로 정리하여 새 곡을 만들어 보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왜 이렇게 멋대로 연주하냐’고 야단을 맞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칭찬을 받은 것이었다.

선생에게서 배운 것에 더하여 새롭게 만든 것을 ‘더늠’이라고 하고,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새롭게 만든 것을 유파라고 한다. 판소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아주 많은 유파를 낳았는데 춘향가만 하더라도 동편제 서편제 중고제 강산제 등으로 갈렸다. 웅건하고 씩씩한 동편제, 부드럽고 애잔한 서편제, 동편제와 서편제의 중간 성격의 중고제, 서편제에서 나온 강산제, 이 모두는 서로 다르다.

일본에는 전통 예능을 전승하는 제도로 이에모토(家元)라는 것이 있다. 한국의 가얏고와 비슷한 고토(琴) 전승 과정을 보면, 선생에게 배운 것을 그대로 전수받고 제자에게 똑같은 내용을 가르친다. 자기 스타일로 고치는 것을 용인하지 않는다. 그리고 선생은 스승이 수여한 이수증서(履修證書)를 벽에 걸어두고 스승과 함께 연주한 무대 사진을 걸어 자기의 정통성을 자랑한다.

일본에 노(能)라는 전통 가무극이 있다. 노는 아무 극장에서나 공연하는 것이 아니고 특별히 마련된 노악당에서만 공연한다. 우리나라 소리꾼이 마당이나 극장이나 아니면 타작마당이나 가리지 않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노는 매우 보수적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 말이 바뀌기 마련이지만, 노는 그냥 옛날 말을 사설로 쓰고 있다. 그래서 책을 봐야만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이다. 판소리는 수많은 유파를 낳아서 여러 버전으로 부르는 데 비해 노는 유파가 많지 않아 호쇼류(寶生流)와 이즈미류(和泉流)의 둘 정도가 살아남았다.

한국인은 일견 제멋대로 사는 것처럼 보인다. 말하자면 제멋에 산다. 한국인은 개인의 창의성을 인정하고 존중해 왔다. 그러나 일본 사람들은 제자들을 틀 안에 묶어두고 개성을 발휘할 기회를 허용하지 않았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의 음악 유전자(DNA)로 비교해 보면 한민족은 일본인에 비하여 훨씬 창의적이고 독창성을 존중해 왔다.

요즘 한국 화장품이 뜨고 있다. 일본을 제치고 세계 6위의 화장품 수출국이 되었다. 그동안 자전거 하나 만들지 못하던 나라가 세계 5대 자동차 수출국으로 떠올랐고, 세계인 10명 중 4명은 한국산 스마트 TV를 보고, 또한 10명 중 3명은 한국산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 이런 실적은 한국인의 창의력이 크게 기여하였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의 정치 경제 외교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고, 저출산으로 한국의 미래가 걱정되는 형편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민족인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자. 한국인 특유의 근면성과 창의력이 우리나라를 여기까지 이끌어 왔다. 우리의 창의성을 잃지 않도록 후세들을 도와준다면 앞으로 이들이 내일의 한국을 열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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