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최병일]TPP, 강 건너 불이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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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통상정책 새 판도… 美日 주도로 끌고갈 TPP
일본에게 TPP는 한국이 힘들게 구축한 FTA망 한순간에 뒤흔들 신의 한수
日과 무역경쟁뿐 아니라 시급한 경제 구조개혁 위해서도 더는 참여 미룰 수 없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이번 주 미국을 방문 중인 아베 일본 총리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29일(현지 시간) 그의 미국 의회 연설이 제국주의 일본의 어두운 과거사를 직시하고 겸허한 반성과 사과를 할 것인지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지만, 아베는 과거사 직시보다는 미래로 나아가기에 더 바쁠 듯하다. 그 미래의 출발점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다.

TPP는 세계 1, 3위 경제대국인 미국과 일본을 포함해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점하는 아시아태평양 12개국 간에 추진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다. TPP 협상은 막바지에 도달했고 이제 정치적인 결심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해진다. TPP 추진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미국 의회의 반대도 극복될 듯하다. 아베의 방미 일정에 맞춰 미국 오바마 행정부에 협상 전권을 주는 신속처리권한 법안 논의가 가속도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신속처리권한이 주어지면, 미 의회는 TPP의 일부 내용을 문제 삼아 재협상을 요구할 수 없게 된다. 극도의 대립과 분열상을 보이고 있는 지금 미국 정치 상황에서 신속처리권한의 통과를 낙관할 수는 없지만, 아베의 미 의회 연설은 TPP 추진론자들에게 힘을 실어 줄 것이 분명하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여 21세기 통상정책의 새로운 판도를 주도할 수 있는 TPP를 놓치면 중국의 부상을 견제할 수 없다는 아베의 연설에 수많은 박수갈채가 쏟아질 것이다.

아베의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거치면서 무기력해지고 자신감을 상실했던 그 일본이 아니다. TPP에 참여하는 것은 경제적으로 옳은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보호주의 정치 때문에 좌고우면해 왔던 상황을 반전시키고 2013년 초 전격적으로 TPP 참여를 결정한 것이 아베 총리다. TPP는 일본경제 부활을 목표로 하는 아베노믹스의 세 개의 화살 중 마지막 화살이다. 돈을 확 풀어 고질화된 디플레 심리를 바꾸고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한다 해도, 일본경제 구조를 개혁하지 않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면 일본경제는 다시 침체의 터널 속으로 들어갈 것이기에 그의 세 번째 화살은 아베노믹스의 성패를 좌우한다.

아베의 절박함에 비해 한국이 TPP를 바라보는 시각은 느긋하다. TPP에 참여하는 국가들의 대부분과 FTA를 체결해 놓았다는 설명과 함께, 한중 FTA의 타결이 더 시급해서 TPP 참여는 그 뒤로 미루어졌다는 것이 정부의 공식적인 설명이다. 한국 정부는 TPP 협상이 타결된 후 가입하겠다는 정도로 입장을 정리한 듯하다. 하지만 실제 TPP에 가입하려면 한일 간에 FTA 협상을 해야 하는데 그게 쉬울 것인가에 대해 뾰족한 답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다. 설령 TPP가 타결된다 하더라도 한국의 TPP 가입은 이런저런 이유로 얼마든지 늦어질 수 있다.

일본의 TPP 참여는 지난 10여 년간 한국이 어렵게 구축해 놓은 FTA 경제외교망을 한순간에 뒤흔드는 ‘신의 한 수’이다. 한국이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 유럽연합(EU)과 FTA를 체결하는 동안 국내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는 리더십 부족으로 우호적인 통상환경 조성 경쟁에서 한국에 한참 뒤졌던 일본은 무기력에서 깨어났다. 과감하게 TPP 참여를 결정했고, 여세를 몰아 EU와의 FTA 협상도 추진하고 있다. 한국이 그간의 성과에 도취해 있기엔 상황이 그리 간단치 않다. 한국과 일본은 부품과 원자재를 동남아로 수출하고, 동남아 국가에서 생산하여 미국으로 수출하는 유사한 분업구조를 가지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TPP에 가입하는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누적 원산지를 사용하여 미국으로 수출시장을 확대하는 것에 반해 한국 기업들은 기존에 체결한 양자 FTA에 의존한다면, 한국 기업이 일본 기업에 비해 무역환경에서 불리해질 것은 자명하다. 한국의 해외시장은 점과 점으로 연결된 선인 반면, 일본은 무수한 점들을 꼭짓점으로 하는 면으로 구성되기에 한국이 일본보다 전략적으로 불리해진다.

TPP 참여는 한국경제의 패러다임 전환과도 맞아떨어진다. 서비스와 투자에서 높은 수준의 자유화를 목표로 하는 TPP는 글로벌 경제위기 발생 이후 가라앉은 내수를 활성화하고 외국 자본과 해외 인력, 외국 소비자를 국내로 끌어들이는 전략과 연계할 수 있다. 아직 도상계획에만 머물고 있는 한국경제 회생 전략의 실현을 더이상 미룰 수 없다. TPP 참여를 수출 기회 확보로만 생각하는 한, 구조개혁의 기회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TPP, 이제 더이상 강 건너 불구경할 때가 아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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