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지순]노사정 대타협 결렬 그 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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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대타협이 결국 좌절되고 말았다. 물론 한국노총은 자신들이 제시한 이른바 5대 논의불가 사항(취업규칙, 일반해고, 임금체계 개악, 비정규직 확대, 장시간 근로 조장)을 정부와 경영계가 철회하면 다시 논의에 참여하겠다는 단서를 붙여 놓긴 했지만 이는 결렬의 책임을 정부와 경영계로 떠넘기는 정치적 수사(修辭)에 지나지 않는다. 적어도 청년 취업난과 비정규직의 비애를 치유할 수 있도록 일자리 기득권을 가진 기성세대의 대표자들이 희생과 양보를 통해 타협하는 감동적 모습은 아직 시기상조인 것 같다. 물론 처음부터 그런 능력과 준비를 갖추지 못한 현재의 노사정 대표자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었던 우리의 판단착오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찌됐건 대타협 결렬 선언으로 당혹한 마음을 추스르면서 대타협이 좌절된 원인을 분석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먼저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관한 노사정 대타협이 무산된 일차적 책임이 정부에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취업규칙, 해고, 근로시간, 임금 등 노동법제도는 모두 근로기준법의 핵심영역이다. 그런 만큼 개혁의 당위성과 필요성은 물론 치밀한 준비와 대안을 갖추고 추진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부는 일관성 있고 책임 있는 메시지의 전달과 구체적인 대안 제시 그리고 협상을 위한 과정관리에 미숙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과 같은 협상카드는 그렇게 던져버리는 것이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노동계이다. 노사정 대타협은 흥정을 통해 이익을 나눠 먹는 교섭이 아니다. 또한 정부의 노동정책에 대항하여 노동계의 이익을 사수하는 투쟁의 장은 더더욱 아니다. 그렇지만 한국노총은 처음부터 자신의 고객(정규직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은 철저히 반대하고 내부 고객을 위한 파이만 키우려는 이기적인 교섭 태도를 고수해 왔다. 조직 내부의 뿌리 깊은 분파주의의 민낯도 여실히 드러났다.

경영계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노동시장의 공정성을 위하여 대기업이 취해야 할 양보와 희생 부분을 명확히 하지 못했다. 같은 시기에 대기업 임원의 연봉과 성과급이 일반 근로자의 최대 100배 이상에 이르는 것으로 보도되는 등 근로자들의 절망감을 부채질하였고 경영계는 근로자에게 감동을 주는 협상안을 만드는 데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이대로 끝낼 수는 없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청년실업 문제, 정년 연장에 따른 대책, 비정규직 근로자의 보호 등 현실적인 이슈를 전면에 내걸긴 했지만 보다 본질적으로는 지난 60년 동안 우리 노동법제도의 기본 틀을 형성해 왔던 과거의 제도를 현대화하고, 낡은 관행을 고쳐 미래지향적 고용시스템으로 발전시키는 데 취지가 있으므로 어렵고 힘들어도 계속 추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근로시간 단축과 통상임금의 명확화라는 현안은 산업현장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노사 간의 소모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시급히 털고 가야 한다. 이 주제는 그동안 판례와 노사정 간 논의를 거쳐 어느 정도 접점이 형성된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제 국회가 입법자로서 책임을 지고 마무리해야 한다. ‘노사합의’ 운운하면서 국회가 자신의 책무를 방기해서는 안 된다. 국회 논의과정에서 각 이해집단은 현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면 된다. 그와 동시에 정부는 사회적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확충과 대-중소기업 간 공정성 확보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실행에 옮겨야 한다. 정부와 국회는 더이상 명분에 집착하지 말고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개혁 방안을 강구해 주길 바란다. 노사의 합의 능력이 한계에 부딪혔다면 결국 정치가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더이상 노사 뒤에 숨어서 변죽만 울리지 말고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다.

아직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은 비정규직법 개정 문제는 좀 더 객관적이고 공정한 실태조사를 거쳐 이해당사자의 의사가 반영될 수 있는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논리와 대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노사정 논의 주체가 누구인지 고민해봐야 할 과제도 던져졌다. 청년과 비정규직에게 희망을 주는 프로젝트임에도 정작 그 주체인 청년과 비정규직의 대표자가 논의과정에서 배제된 것도 이번 사태의 근본적 문제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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