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대호]최저임금 대폭 상향에 앞서 할 일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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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과는 판이한 한국의 일자리-소득분배 구조
최저임금 대폭 올리려면 소득 상위 10∼20% 집단
고용보험료 더 내고 자신들 연장근로 내놓아야
비정규직 적대시하는 고용 패러다임도 정비 필요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법정 최저임금을 시간당 5580원(5.26달러·달러당 1060원 기준)에서 8000원 혹은 1만 원으로 대폭 올리자는 얘기를 듣고 있으면 불안과 공포가 엄습한다. ‘짧은 생각’의 ‘긴 폭력’, 즉 한계기업의 고용 대학살이 재연될 것 같아서다. 기우가 아니다. 과거 경험으로 미뤄 볼 때 짧은 생각이 실제 정책으로 입안될 조건이 잘 갖춰져 있다. 첫째, 미국 일본 독일 등의 최저임금 대폭 인상 움직임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새해 국정 연설을 통하여 시간당 7.25달러인 최저임금을 10.10달러로 올리자고 제안했다. 일본도 12년 만에 시간당 780엔(약 7300원)으로 올렸다. 둘째, 그 방식은 묻지 않고 여하튼 임금소득을 늘려주면 경제가 성장하고, 양극화가 완화된다는 최신 이론(소득 주도 성장론)이다. 정치인, 관료, 노조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좋은 성장론은 없을 것이다. 셋째, 귤나무에서 탱자가 열리게 하는 한국의 독특한 기후와 토양도 모르고, 선진국 귤나무를 그저 옮겨다 심으려는 사대주의적 담론 생산자들이다. 이들은 5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 평균임금(정액급여) 같은, 부당한 자와 저울을 휘두른다. 물론 가장 결정적인 것은 양극화 해소를 위해 뭐라도 하긴 해야겠는데 어디를 건드려야 할지를 모르는 혼미한 여야 정치인들이다.

귤을 탱자로, 선진국 유행 정책을 정책 폭력극으로 바꿔버리는 토양과 기후의 핵심은 선진국과 판이한 일자리 및 소득 분배 구조다. 최저임금 규제는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압박하여 자체 생산성을 높이든지, 아예 퇴출시켜 묶여있던 노동과 자본을 생산성 높은 부문으로 이전시키든지, 그도 안 되면 해외로 내쫓든지 택일하는 정책이다. 이 과정에서 수반되는 노동의 고통은 실업보험, 전직 교육 등 사회안전망으로 완충한다. 관건은 고생산성 부문 내지 비교우위 산업의 고용 창출, 흡수 여력이다. 그런데 한국은 바로 여기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여기서는 중소기업과 달리 해고를 살인으로 간주하기에 신규 고용에 지극히 인색할 수밖에 없다.

한국의 산업과 기업(규모)별 임금 격차가 극심한 것은 진입장벽(규제) 또는 비교우위 산업의 지독한 고용 경직성과 관련이 깊다. ‘전기, 가스, 수도사업’의 월평균 임금은 744만 원, ‘금융 및 보험업’은 620만 원인 데 반해 무한경쟁 상황에 놓인 ‘숙박 및 음식점업’은 190만 원이며, 5∼9인 사업체의 상용임금 총액은 243만 원인 데 반해 300인 이상은 483만 원인 이유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생산성은 ‘부가가치÷노동량’인데 분모(노동량)를 함부로 늘릴 수 없다는 얘기다. 이는 취업자(2510만 명)나 임금근로자(1870만 명)가 되고 싶은데, 못 되거나 안 되는 거대한 집단을 만들어 낸다. 비경제활동인구와 자영업자 말이다. 가물에 콩 나듯 나오는 괜찮은 일자리를 향한 살인적인 경쟁도 만들어 낸다. 양극화가 심한 나라에서는 최저기준을 정할 때는 평균값을 사용하면 안 된다. 정몽준 전 의원을 포함해서, 국회의원 300명의 재산 평균을 산정하여 이를 근거로 세비 없애자는 얘기를 하면 되겠는가?

지금 진짜 비정상인 것은 최저임금에 대해 ‘그것 갖고 도대체 어떻게 사냐?’고 혀를 끌끌 차는 공공부문, 대기업, 전문직과 소득 상위 10% 소속이 대부분인 노조원들의 임금과 요구 수준이다. 동시에 비교우위 산업에서 고용을 창출하려야 할 수 없는, 한번 채용하면 정년 보장을 당연시하는 고용 패러다임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 좋다. 많이 올리면 더 좋다. 다만 그 전에 한계기업에서 쏟아져 나올 수십 수백만 명을 받아 안기 위해서 상위 10∼20% 집단은 고용보험료부터 더 내고, 자신들의 연장근로를 내놓아야 한다. 임시직, 시간제, 계약직을 비정규직이라며 적대시하는 고용 패러다임도 바꿔야 한다.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아니라 비정규직이라도 억울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최저기준 상향으로 인해 극심한 고통을 당할 한계기업의 노동과 자본을 위해 자기 것을 내놓을 생각 없이 부르짖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론은, 비루한 판잣집 인생들이 보기 싫다고 싹 쓸어서, 눈에 안 보이는 변두리(광주대단지)에 처박아 버리자는 1970년대 개발 폭력과 다름없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최저임금#고용보험료#비정규직#연장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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