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지순]노동시장의 위기와 4월 총파업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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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실업 사상 최악 치닫고 소득 불평등 위험수위 넘어
현재의 노동시장 위기는 일시적 불황 여파 아닌 구조적-상시적 문제
노사, 공동체 정신으로 개혁 힘모아도 시간 빠듯한데 4월 총파업 결의가 웬말인가

시한폭탄의 초침이 돌기 시작했다. 노사정위원회가 3월 말까지 시한을 정해 놓고 노동시장의 불확실성 해소와 비정규직 문제 개선을 위하여 노동시장 구조 개선 대타협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시점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위원장이 만나 4월 이후 총파업을 위한 전열을 가다듬고 있다. 이미 전교조는 4월 준법투쟁으로서 연가(年暇)투쟁을 공식화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지금의 총파업 결의는 다소 뜬금없다.

노동계는 지난해 12월 23일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동시장 구조 개선의 원칙과 방향이라는 기본합의안을 국민에게 제시하였다. 기본합의안의 배경은 우리나라를 둘러싼 경제사회적 환경이 급변함에도 이에 대한 우리 노동 질서의 대처가 미흡하여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 및 임금 격차가 고착화되고 노동시장의 위기가 초래되었다는 현실 진단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노동시장의 패러다임 전환과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를 위해서 노사정은 노와 사, 현 세대와 미래 세대를 아우르는 공동체적 관점에서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추진한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이른바 3대 노동현안으로 부르고 있는 통상임금, 실근로시간 단축, 정년 연장의 연착륙이라는 기본 문제부터 공동체적 시각은커녕 노사 모두 여전히 좁은 진영논리에 갇혀 서로 충분한 접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와 소득 불평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실질적 해법 마련에 다가서지 못하고 팽팽히 맞서 있다.

다시 한 번 현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정년 연장에 대비해 기업에서는 중장년층의 ‘명퇴 쓰나미’가 이미 시작되었고, 청년실업률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비정규직 근로자는 600만 명을 넘었고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의 소득은 대기업 정규직 근로자의 38.6%에 불과하다. 청년들에게 희망이 되어야 할 대기업의 채용 시장은 여전히 ‘겨울왕국’처럼 얼어붙어 있다. 올해 500대 기업 대졸 공채 규모는 전년 대비 10% 감소했다. 이러한 노동시장의 현실은 일시적인 경기 불황의 여파가 아니라 점점 구조화 상시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가까운 장래에는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명백히 위기로 진단된다.

우리가 처해 있는 위기는 근본적으로 일자리에 관한 것이다. 우리 경제는 이미 고용 없는 성장 국면으로 들어섰지만 그럼에도 어떻게 하면 좀 더 많은 근로자와 구직자가 안정적인 일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일자리 간 임금 격차를 줄여 양극화 문제를 완화할 수 있을지, 그 제도 개선 방안 마련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노사정은 국민에게 노동시장 개혁을 약속했다. 그 와중에 노사정위원회와 전문가들이 정부의 들러리가 되어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추진하려 한다는 노동계 일부의 주장은 노사정 대타협의 의지를 꺾으려는 다분히 악의적인 발상으로 보인다. 통상임금과 실근로시간의 문제를 기본적으로 노사 자치의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는 해법은 노동 규제를 더이상 획일적, 경직적 규제에 맡길 것이 아니라 현장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자율적 노사 자치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풀어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더구나 이를 빌미로 총파업을 선동하는 것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의 노동시장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 현재의 위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 개선이 없으면 앞으로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르는 기나긴 시간 중장년층의 빈곤화가 심화되고 일자리를 찾는 상당수 청년들의 고통은 더 커져갈 것이다. 기업과 근로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성세대와 청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익이 서로 조화되는 공동체정신에 기초한 노동정책을 만들어내야 한다. 위기를 극복하는 노동 현안의 해법은 간단하다. 넘치는 것은 줄이고 모자란 것은 채우는 것이다. 무엇을 쟁취할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양보할 것인가 고민하는 것, 그것이 공동체정신이다.

한국노총이 노사정 대화를 통한 협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입장을 천명한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수장도 새로 선임되었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비록 남은 기간이 길지 않지만 국민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정치권의 무기력에 실망한 국민들은 노사의 진정성 있는 노력을 통해 다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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