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천영우]北의 전단 공포와 ‘살포 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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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수뇌부, 외부정보 유입을 체제 흔들 최대 위협으로 간주
고위급회담 조건으로 내걸만큼 절박하고 집요하게 중단 요구
국민의 안전 위태롭게 하는 일부단체 ‘요란한 홍보쇼’는 막되
선의의 전단 살포와 구별해야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북한이 민간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 중단을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지와 함께 남북 고위급회담 재개의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면서 정부의 고민도 깊어가는 듯하다. 북한은 왜 회담 재개를 인질로 삼을 만큼 전단 살포 저지에 이토록 절박하게 매달리는가?

전단 살포는 대북 심리전 수단 가운데 가장 원시적이지만 자극적 수단이다. 대북 심리전이 남북회담 의제로 등장한 것은 1991년 남북 기본합의서 협상 과정에서였다. 그 결과 1992년 기본합의서의 남북 화해부속합의서에 ‘언론 삐라 및 그 밖의 다른 수단 방법을 통해 상대방을 비방 중상하지 아니한다’(3장 8조)는 조항이 포함됐다. 남북 기본합의서는 북의 핵개발과 남북 관계 파행으로 곧 사문화됐으나 북한은 2002년부터 다시 대북 심리전 중단에 공을 들이기 시작해 2004년 6월 4일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가까스로 ‘6·4합의’(서해 해상에서 우발적 충돌 방지와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문)가 타결됐다. 노무현 정부가 서해상 충돌 방지를 요구하자 북한이 이를 심리전 중단을 관철하는 데 활용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확성기 방송과 게시물, 전단 등을 통한 모든 선전활동이 중지되고 전광판 등 선전수단도 제거됐다. 6·4합의를 관철하기 위해 북한은 김일성 동상에 가림막을 치는 수모까지 감수했다.

그런데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과 함께 6·4합의는 그 존재 이유를 상실하게 됐고 5·24조치가 발표되는 날 국방부는 대북 심리전 재개를 단행했다. 북한이 천안함 폭침으로 잃은 것 중 뼈아프게 여기는 것이 바로 6·4합의다. 노무현 정부 당시 남한의 대규모 식량, 비료 지원을 ‘조공’으로 여길 만큼 오만한 자세로 일관하던 북한이 대북 심리전에 대해서만은 유독 저자세를 보였다. 이명박 정부와는 상종하지 않겠다면서도 6·4합의 복원에는 비굴하리만큼 매달렸다. 집요한 ‘스토킹’에 못 이겨 남북 당국 간 비공개 실무회담이 몇 차례 열렸으나 북한이 대북 심리전 재개의 원인 행위인 천안함 폭침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북이 대북 심리전 중단에 이렇듯 혈안이 된 것은 외부정보 유입을 북한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가장 심각한 위협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다수 북한 주민이 그들이 겪는 모든 불행은 북한 체제의 본질과 지도자들의 잘못된 선택 때문이며, 한때 북한보다 더 가난했던 중국이나 베트남을 따라갈 수 없는 처지에 놓인 것도 수령 독재 체제에 있다는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거짓과 억압으로 지탱되는 신정(神政) 체제는 설 땅을 잃게 된다. 또 다른 이유는 김정은 집권 이후 군부가 ‘최고 존엄’ 훼손에 더 민감해진 데 있다. 장병들의 사상적 동요를 막는 일도 다급하지만 최고 존엄을 사수해야 할 군부로선 코앞에서 일어나는 전단 살포를 속수무책으로 방관만 했다는 누명은 치욕이다. 공개적 전단 살포에 대해 물리적 타격도 불사한다는 자세를 보여줄 때 충성심을 의심받지 않을 수 있다.

북의 긍정적 변화라는 대북정책 핵심 목표를 달성하는 데 방송이 더 효과적 수단이지만 전단 살포도 여전히 효용을 발휘하고 있으므로 포기할 수 없다. 더구나 외부정보 유입은 대한민국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강력한 비대칭적 수단으로 우리가 북한 핵무장을 두려워하는 것 이상으로 북한은 정보 유입에 공포심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는 국민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불가피하거나 국가안보상 필요한 범위 내에서 표현의 자유와 시민단체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

해법은 대북전단 살포 자체를 목적으로 삼은 단체와 ‘전단 살포 쇼’를 벌이는 단체를 구별하는 데 있다. 국민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것은 전단 살포 쇼이므로 이런 단체만 규제하면 된다. 소리 소문 없이 바람이 불 때만 전단을 보내는 단체의 경우 규제할 명분도 근거도 없다. 북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인근 주민도 불안에 떨게 하지 않고 전단을 보낼 수 있는데 굳이 사전 홍보까지 해가며 풍향에 관계없이 전단 보내기 이벤트를 벌이는 단체들은 선의의 대북전단 살포마저 어렵게 한다. 후원자들도 ‘쇼’를 생업으로 하는 단체에 대한 후원을 중단하고 언론도 이들 단체에 이용당하지 말아야 한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행하는 심리전이 최선의 심리전이다. 정부는 대북방송 투자도 대폭 확대해야 한다. 북의 긍정적 변화를 촉진하는 데 대북 심리전은 타협하거나 포기할 수 없는 수단이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대북전단#회담 재개#대북 심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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