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구현]이번 위기는 왜 다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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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현 KAIST 경영대 초빙교수
정구현 KAIST 경영대 초빙교수
새해가 이제 보름 정도 남았는데 사회는 어수선하고 시민들의 마음도 편하지는 않은 것 같다. 기업들은 미래에 대해서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고 임직원들도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지난 60년간 한국경제의 성장 과정을 돌이켜보면 이보다 더 어려운 외부의 충격도 잘 적응하고 이겨내 왔다. 가깝게는 외환위기 때 국민들이 똘똘 뭉치고, 또 기업들이 노력해서 3년 만에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 전으로 돌아가면 두 차례의 석유파동 때 국가가 부도 위기에 몰렸지만 잘 헤쳐 나왔다. 1960년대에는 아무것도 없는 척박한 환경에서 산업을 일구고 기업을 키웠다. 불굴의 의지와 도전정신으로 어려움을 잘 극복해온 대한민국호가 왜 지금의 상황에서는 좌절하는가?

경제와 기업을 중심으로 보면 지금의 위기는 몇 가지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 첫째는 국내 경제와 세계경제가 동시 불황이라는 점이다. 외환위기 때에는 아시아 몇 나라만 위기를 맞았기 때문에, 한국은 원화가치를 대폭 떨어뜨리고 수출 증가를 통해서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은 세계경제 전체가 6년 넘게 금융위기와 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국내 경제의 거시지표가 안정되어 환율이 정책 수단이 되기 어렵고, 오히려 엔화의 지속적인 가치 하락이 부담이 된다. 세계 전체 교역규모 증가도 경제성장세를 밑돌 정도로 부진하다. 제조업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수출해서 먹고살던 한국경제의 운용전략이 벽에 부닥친 것이다.

두 번째 다른 점은 우리 경제가 이제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선진국과 앞선 기업을 쫓아가던 시대에는 위기 극복이 쉬웠다. 잘하는 나라나 잘하는 기업을 모방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은 목표를 정해놓고 ‘돌격 앞으로’ 하면 아주 잘하고 오래 일하며 끝장을 보는 ‘몰입’에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목표를 잡기가 쉽지 않다. 어느 나라가 우리의 교과서가 될 수 있을지도 애매하고 어느 기업이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이제 우리 스스로가 목표를 정하고 새로운 성장 방정식을 찾아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빠른 모방자’ 전략이 시효가 다 된 것이다.

세 번째 다른 점은 강력한 도전자가 나타났다는 점이다. 다름 아닌 중국이다. 1990년 이후 지난 25년간 한국 기업이 급성장을 하는 데는 일본 기업들의 소극적 경영이 도움이 되었다. 일본 기업은 1991년에 거품이 꺼지면서 그 이후 소위 ‘대차대조표 불황’을 맞아 설비확장 및 시장 개척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 중국 기업들은 매우 공격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 과거 한국 기업의 강점이었던 속도경영, 환경변화에 대한 기민한 대응, 운영 효율성의 제고와 같은 전략을 한국 기업보다 더 잘하는 중국의 민간기업이 우후죽순처럼 성장하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이런 외부 상황과 더불어 국내의 사업 여건은 매우 좋지 않다. 저성장에 고비용 구조가 정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위기는 과거와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대응이 필요하다.

위기 돌파를 위한 몇 가지의 방안을 생각해 본다. 먼저 정부가 강한 개혁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요즈음 국제 금융가에서는 한국 정부의 정책 발표에 대해서 믿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정책은 발표하는데 시행이 안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의 돌파력도 부족하고 국회가 발목을 잡는 일이 자주 있다. 올해 안에 하겠다는 공무원연금 개혁만 해도 결국 해를 넘기게 된 상황이다. 연금 개혁은 개혁 당사자들에게는 억울한 일이므로 대통령부터 나서서 양해와 희생을 간곡히 호소해야 한다. 공무원연금 개혁이 성공하면 그 다음에 노동시장 개혁에 착수하되 이 문제도 정치 지도자들이 다걸기(올인)해서 근로자와 노동조합을 설득해야 한다.

기업들도 외환위기 당시의 마음으로 돌아가서 구조조정을 하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 이른바 문어발식 사업구조는 내용 연수가 지난 모형이다. 그룹이라고 경쟁력도 없는 기업들을 끌고 가서는 국제경쟁력을 만들어내기 어렵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계열사의 매각은 그룹이 실패하거나 도산할 때만 하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있다. 이제 이런 의식을 불식하고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과감한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

과거와는 다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환율과 수출로 돌파구를 열던 과거 방식으로는 어렵다. 경제와 기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우선되어야 한다.

정구현 KAIST 경영대 초빙교수
#한국경제#중국#급성장#대차대조표 불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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