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손성원]삼성처럼 회사 팔아치워야 살아남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GE의 글로벌화 이끈 잭 웰치, 한계사업 과감히 매각하고 1, 2등 주력사업에 전력 투자
비즈니스도 승자독식 구조… 3, 4위 기업 입지 갈수록 좁아
세계시장서 생존하기 위한 삼성의 ‘선택과 집중’ 다른 대기업들도 배워야

손성원 객원논설위원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채널아일랜드 석좌교수
손성원 객원논설위원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채널아일랜드 석좌교수
한국의 한 전직 대통령은 재벌을 칩(chips·전자)에서 십(ships·조선)까지 경제의 모든 분야에 촉수를 뻗치는 문어 같다고 했다. 이젠 시대가 변했다. 화학, 방위사업과 관련된 4개 회사를 떼어내겠다는 삼성의 최근 발표는 박수를 받을 만하다. 이런 추세가 다른 분야까지 확대된다면 한국 경제는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경쟁력도 갖추게 될 것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이 이룬 눈부신 경제성장은 많은 자본과 노동을 이용했기에 가능했다. 재벌이 일부 희소자원을 효율성보다는 몸집을 늘리는 데 낭비한 것은 잘못된 일이었다. 삼성이 희소자원을 전자 건설 설비 금융서비스 등 4대 부문에 집중하기로 한 결정은 규모에서 효율성으로 경영의 초점을 이동하겠다는 뜻이다. 포스코나 KT 두산 한화를 포함한 다른 기업들도 역점 분야를 옮긴다면 경제에 아주 고무적인 신호가 될 것이다.

미국 유럽 같은 선진국에서도 대기업집단(conglomerate)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진행하고 있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최고경영자(CEO)였던 잭 웰치는 오늘날의 GE라는 ‘예술’을 만든 거장(巨匠)이다. 비즈니스스쿨에서 비즈니스가 어떻게 굴러가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명사(名士)로 떠받드는 사람이 바로 웰치다.

그는 GE 경영에 2개의 기본 원칙을 갖고 있었다. 글로벌마켓에서 세계 1등 아니면 2등을 하는 비즈니스만 고수했다. 서비스분야에선 시장점유율이 탄탄하게 뒷받침되는 것만 했다. 글로벌마켓에서 경쟁해 이길 수 있는 세계적인 수준의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만 만들었다. 세계 3, 4, 5위 기업은 갈수록 이윤이 줄어드는 추종자들밖에 되지 않는다.

웰치 치하의 GE는 이런 기준을 충족한 사업을 14개 가졌다. 플라스틱에서 제트엔진까지 사업은 아주 다양했지만 기술과 경영을 공유하면서 공동가치(common value)로 밀접하게 결합됐다. 인수합병(M&A) 연구개발(R&D) 투자를 포함해 회사에서 내린 모든 의사결정의 초점은 14개 사업의 성장과 활력을 키우는 데 맞춰졌다.

웰치는 또 단순함을 중시했다. 14개 사업에 대해 관리는 작게, 의사결정은 빠르게 하는 소기업처럼 운영하려고 했다. 대기업집단에서는 거대 관료주의가 효율성을 해치는 심각한 맞바람이다. 웰치는 경영의 단계를 9개에서 4개로 줄였다. 관료주의를 줄이자 아이디어와 독창력이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회사를 돌아다녔고 의사결정은 신속하게 내려졌다. 경영을 오로지 4단계로만 해도 직원들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시장에서 이기는 것을 연결할 수 있었다. 웰치의 이런 마인드가 작은 기업의 민첩성과 함께 따뜻한 가슴을 가진 큰 기업을 일굴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웰치는 RCA TV 제조 부문을 프랑스회사 톰슨에 파는 대신 톰슨은 의료진단 사업을 GE에 매각했다. 결과는 두 회사에 모두 득이 되는 윈윈이었다. GE에 RCA TV는 현금을 고갈시키는 돈 잃는 사업이었다. 세계 TV 제조 순위도 한참 아래 있었다. 하지만 GE의 의료시스템 사업은 이미 번창하고 있었다. 이런 거래 뒤에 GE는 영상검사인 캣 스캔(CAT scan)과 자기공명영상(MRI) 장치를 포함한 의료진단 분야에서 1등이 됐다. 이후 의료 사업 경영자는 웰치에 이어 GE의 CEO가 됐다. 톰슨도 TV 제조업에서 시장점유율을 2배로 늘려 유럽시장에서 1등을 차지했다.

이후 수년 동안 웰치는 자신의 비즈니스에 어울리지 않는 사업을 많이 매각했다. 가정용품과 소비자 가전용품 전력변압기 사업 니켈광산 개발 등 웰치가 처분한 많은 사업들은 한계선상에 있던 것이었다. 적자를 냈을 뿐 아니라 사업 전망도 좋지 않았다. GE는 사업부 매각으로 마련한 돈으로 GE캐피털 같은 기존 사업을 보완하는 기업을 사들였고, NBC TV 등 신규 사업에도 진출했다.

삼성과 다른 재벌들은 여기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은 한국 경제에 활력을 높이기 위한 올바른 방향의 첫 단추다. 세계적으로도 경쟁력을 갖추려면 추가적인 사업 재조정이 필요하다. 한국 재벌의 경영구조는 너무 복잡하다. 직원들의 숨어 있는 에너지와 열정을 발산시키려면 이런 복잡다단한 구조를 단순화해야 한다. CEO를 포함해 외부의 전문경영인을 수혈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노력이 뒤따른다면 한국 경제는 보다 생산적이고 활력이 넘치게 될 것이다.

손성원 객원논설위원 미 캘리포니아주립대 채널아일랜드 석좌교수
#삼성#잭 웰치#매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