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정성진]개혁적 보수 성향 국민들이 하는 보통 걱정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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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진 국민대 명예교수 전 법무부 장관
정성진 국민대 명예교수 전 법무부 장관
보수니 진보니 하는 용어는 사용하기가 매우 조심스러운 표현이다. 흔히 학계에서 쓰는 어려운 개념규정은 일단 피하기로 하자. 우리 사회에서 보통 통용되는 방식에 따른다면 보수주의는 급격한 변화를 피하고 현 체제를 유지하려는 사상이나 태도를 지칭하고, 진보주의는 사회적 모순의 변혁을 꾀하는 전진적 사상을 총칭하며 평등이나 사회정의, 노동의 가치 등을 강조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 국민의 의식 성향이 어느 쪽에 가까우냐에 관하여는 견해가 갈릴 수 있다. 그러나 지난해 동아일보와 재단법인 아산정책연구원이 전국의 성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3년 국민의식조사’ 결과 보도를 보면, 스스로 ‘보수’라고 답한 사람이 32.7%, ‘진보’라고 답한 사람이 26.1%이고 나머지 41.2%는 ‘중도’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물론 이 비율은 그때그때의 사회적 상황이나 정치적 여건에 따라 변수가 매우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70대의 연령에 속하며 공직자 출신인 필자의 주변에는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그들과 스스럼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보수적 성격이 강한 현재의 정부에 대하여 의외로 자연스럽지만, 한편으로 매우 조심스럽기도 한 불만이랄까 비판이 조금씩 삐져나옴을 발견하게 된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우선 지금의 정부행정이나 여당의 정치 행태가 너무 대통령의 심기를 살피는 듯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비친다는 점이다. 신현돈 전 1군사령관의 해임 사유에 관한 초기 발표나 해병부대의 애기봉 철탑 철거 경위보고와 관련된, 앞뒤가 다소 맞지 않는 듯했던 보도 내용이 그 한 예일 것이다. 최근 방위산업 비리와 관련하여 검찰이 주도하는 합동수사단 수사와 감사원이 발표한 특별감사단의 감사가 자칫 중복될 우려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비슷하게 시작되고 있는 것도 일부 그런 우려를 낳게 한다.

또 국민들의 보편적 정서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항과 정부책임자가 중요하다고 보아 집행하는 결과 사이에 괴리가 있을 때 그 괴리의 존부와 보완책에 관하여 정부 내에서 충분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쳤는지에도 회의적인 시각이 제법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통령제하의 정부에서 인사권을 포함한 중요 정책의 집행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임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다소 파격적 인사의 대한적십자사 총재 선임과 같은 결과도 국민들로서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치자. 그러나 나라에 어떤 일이 터지고, 며칠 후 대통령께서 국정교과서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말씀을 하고, 그런 다음 정부가 그 말씀의 의의를 되새기며 홍보에 나서는 듯한 모습이 반복된다면 어떤 친정부적 보수주의자도 약간은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과연 최선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라고 혼자 중얼거리면서.

다소 개혁적 성향을 가진 보수주의자는 일부 회귀적(回歸的) 경향을 보이는 정부 운영과 국가주의적 통치에 대하여도 응분의 경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인터넷의 광범한 이용과 서구적 생활방식의 보편화로 지금은 인간과 사회를 국가보다 우선시해야 한다고 믿는 국민이 1970년대나 80년대에 비하여 훨씬 많아진 것이 현실이므로, 이제는 정부행정도 그러한 국민을 단순히 통제하려 하기보다 끈기 있게 설득하고 호소하여 사회와 국가 발전에 모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할 책임이 있다.

작은 예지만 부산영화제에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다큐멘터리의 상영을 취소하려다가 실패하였으나 오히려 한국 정부의 유연성이랄까 자유로움을 보여주는 부수적 소득이 있었음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청와대가 국가안보실을 구성함에 있어서 군과 외교관을 주로 하고 남북회담 전문가나 경험자를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하여도 부처 간 혼선을 우려하는 시각이 있었다. 개혁적 보수 성향을 가진 국민들의 소박한 걱정. 지금은 단순한 우려의 수준이지만 그것이 만약 포기나 절망으로 바뀐다면 우리 사회에는 과연 어떤 변화가 올까, 지금부터 또 그것이 걱정이다.

정성진 국민대 명예교수 전 법무부 장관
#보수#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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